
"유산균·식이섬유 장 운동에 좋아"… '웰빙 고급술' 이미지
일본 백화점 진열대에는 작은 유리병에 담긴 막걸리가 있다. 한국에서 수출한 프리미엄 막걸리다. 국순당의 '마이무(米夢)', 배혜정 누룩도가의 '아리랑의 시(亞里蘭の時)'처럼 한국에선 찾기 힘든 고급 막걸리가 이곳에서는 불티 날리게 팔린다. 이 막걸리를 어느 일본인들이 마시는 걸까.
막걸리의 주 고객은 젊은 여성들이다. 한국에서 막걸리가 아저씨, 할아버지용이라는 인상이 강한 것과 정반대로 일본에서 고급스런 이미지인 것이. 그래서 포장도 고급스럽고 이름도 여성 취향으로 붙여졌다.
일본에서 막걸리는 한국 요리가 유행하면서 덩달아 팔리고 있다. 한국 요리가 몸에 좋은 '웰빙(well-being)' 식품으로 평가 받자 그 한국 요리의 맛을 끌어올려주는 술로 막걸리가 꼽히게 된 것이다.
일본 여성들은 막걸리를 웰빙 술로 여긴다. 막걸리에 들어있는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장 운동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맛도 그렇다. 한국에서는 사발로 퍼 마시며 텁텁한 맛을 즐기지만 일본인들은 작은 잔으로 마시며 산미(酸味), 감미(甘味)를 느낀다. 한국 막걸리의 낮은 알코올 도수도 여성들에겐 안성맞춤이다. 일본에도 막걸리와 비슷한 니고리자케(濁り酒)라는 탁주가 있지만 알코올 도수(14)가 청주와 비슷해 여성들이 꺼린다.
일본의 번화가인 신주쿠에서는 막걸리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막걸리 바 '데지마우루(てじまうる)'에서는 한국 요리와 함께 30종류의 막걸리를 마실 수 있다. 메뉴판에 적힌 막걸리의 설명은 와인바를 방불케 한다. 혼자 오는 여성 손님을 겨냥해 다양한 막걸리 칵테일도 준비돼 있다.
한국의 막걸리가 인기를 끌자 일본의 주류회사도 일본 탁주의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있다. 나카노(中�)주조의 일본풍 막걸리 '도라지노우타(도라지의 노래:とらじの唄)'는 일본에서 '야키니쿠, 한국요리에 딱 어울리는 술'이라고 광고한다. 이런 '가짜 막걸리'가 생겨나자 일본에선 '한국에서 만들어지지 않은 술을 막걸리라고 부를 수 없다'는 논쟁도 벌어졌다. 법적 결론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백화점 등에서는 한국 막걸리는 '막걸리(マッコリ)', 일본 막걸리는 '막걸리풍(マッコリ風)'으로 구분해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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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볼쇼이 아이스쇼’팀이 가장 어려웠을 때 도움을 준 친구 같은 존재지요. 그래서 15년 동안 한국 공연을 해오고 있습니다. 사실 러시아 공연만 하기에도 벅차고, 더구나 프랑스 독일 등 유럽과 미주 공연을 다니면 도저히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어려웠을 때 도움을 주었던 한국에 대한 의리 때문에라도 공연을 계속 해야지요.”
러시아 피겨 스케이트계 거장(巨匠)이자 볼쇼이 아이스쇼의 단장인 이고르 보브린은 한국에 대한 애착이 남다랐다. 볼쇼이 아이스쇼를 이끌고 추석 연휴인 오는 9월15일까지 서울 목동 아이스 링크 공연에 나선 그는 “이번 공연은 기존 스케이팅에 접목한 발레에다 오페라·뮤지컬까지 접목시킨 첫 공연으로 세계 최정상급 수준”이라고 말했다.
볼쇼이 아이스쇼는 지난 1993년 국내 첫 공연을 시작으로 15년 동안 한국에서 은반 예술의 꽃을 피웠다. 피겨 스케이트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에서 대중적인 관심을 끌게 한 배경이 됐다. 한국을 찾은 외국 공연팀이 이처럼 장기간 정기적으로 국내 공연을 한 팀은 거의 없다. 더구나 국내에서만 100만 명 이상이 공연을 관람했을 정도로 국내 관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것도 드물다.
볼쇼이 아이스쇼가 한국을 찾은 이유는 남다르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는 경제 침체의 나락으로 빠졌다. 세계 스포츠계를 호령했던 소련의 엘리트 스포츠 정책도 정치·경제 혼돈이 계속되면서 침체에 빠졌다. 스포츠 시설이나 운동 선수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미래가 불투명해지자 세계적인 스포츠 스타들도 하나 둘 사라져 갔다.
이 와중에서 볼쇼이 아이스쇼의 단장 겸 예술감독 이고르 보브린은 러시아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의 운명을 떠안았다. 그는 러시아가 낳은 ‘스케이트계의 전설’이었다. 유럽 챔피언 경력을 통해 국가적인 영웅으로 떠오른 뒤 러시아 최고의 예술인에게 주어지는 ‘공훈 예술가’로 임명돼 후배 양성에 몰입하던 때였다.
보브린은 극도의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이 은퇴와 비즈니스 유혹에 빠져 나가는 것을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방황하던 선수들을 규합해 볼쇼이 아이스쇼 팀을 구성했다. 소련시절 본인이 정부로부터 받은 격려금 등 사재를 전부 투자해 실의에 빠진 선수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명성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내 투자가는 전혀 없었다. 경제난으로 공연을 올리기도 힘들어 러시아내 공연 조차 할 수 없었다.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 등 그의 능력을 인정한 국가들이 볼쇼이 아이스쇼 팀을 초청해준 것이 유일한 수입원이었다. 유럽 공연을 통해 겨우 단원들의 생계를 해결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와중에서 한국 공연을 한 것은 볼쇼이 아이스쇼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됐다.
“1993년 당시 국내 공연단체인 IMG(대표 이성봉)를 통해 한국 공연을 하게 됐지요. 그 때가 사실 팀이 가장 어려운 시기였지요. 지인들에게 하소연도 했지만 선뜻 지원을 받지 못하던 때였거든요. 그 와중에서 서울 공연을 한 것이 나와 볼쇼이 아이스쇼의 운명을 바꾸었지요.”
보브린 단장은 아직까지 한국에 대한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동계 올림픽(당시 러시아 대표팀 예술감독)에서 러시아가 스케이트에서 다시 세계를 호령케 한 주역이다. 러시아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과 지도자들이 모두 해외로 돈벌이를 위해 떠났을 때 그는 묵묵히 러시아에서 피겨 스케이트 선수들을 독려하고 후배들을 양성해 온 것이다. 그는 최근 수년 동안 매주 TV방송의 피겨 선수와 연예인을 등장시킨 ‘스타와 스케이트 타기’ 프로그램을 직접 제안하고, 출연하면서 러시아에 ‘제2의 스케이트 붐’을 일으켰다. 결국 그의 노력덕에 러시아는 소치 동계 올림픽 유치로까지 이어졌다.
보브린 단장은 러시아 방송 출연 때마다 한국에 대한 인상을 말한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오늘날 볼쇼이 아이스쇼 팀이 존재하게 된 이유가 됐지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단원들의 생계 문제를 생각해 한국 공연 결론을 내렸지요. 하지만 거의 한달 동안 공연을 하면서 한국 관객들의 엄청난 성원을 받으면서 모든 게 달라졌지요. 한국 공연을 계기로 볼쇼이 아이스쇼는 국제 무대에 널리 알려졌지요. 단원들에게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고 세계 순회 공연도 막 밀려들어 왔지요.”
보브린 단장은 이런 한국과의 인연을 무엇보다 한국 공연을 중시한다. 특히, 7~8월 유럽 각국의 휴가 시즌, 즉 공연 휴식기지만 한국의 여름 시즌에 맞춰 공연을 해왔다. 여름 휴가를 돈보다 중시하는 단원들에게 휴가를 보내지 못하는 아픔을 겪으면서 말이다.
보브린 단장은 “볼쇼이 아이스쇼는 단순한 장르의 예술이 아닙니다. 미국 등 일부 아이스쇼팀이 지나친 쇼나 흥행성 위주로 공연을 하지만, 볼쇼이 아이스쇼는 은반 위에서 발레와 오페라·뮤지컬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예술을 선보인다.”고 말한다.
한국 공연 때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여 온 볼쇼이 아이스쇼는 올해 한국 관객들에게 새로운 환상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도하는 오페라와 스케이팅의 접목이다. 한국 팝페라 테너 박완과 뮤지컬 배우 이혜경이 직접 은반 위 무대에서 노래를 하면 그 목소리를 따라 아이스쇼 단원들은 미끄러지듯 스케이팅 쇼를 펼친다.
러시아의 스포츠 전문 TV ‘스포르트’는 “볼쇼이 아이스쇼에서 보여준 이고르 보브린의 천재적인 예술혼에 러시아와 세계가 감동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예술 비평가들은 “보브린이 은반 위에 펼쳐놓은 작품을 보면 예술혼이 그대로 느껴진다”며 “관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몰입되고 반복적으로 공연을 보게 된다”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9일 내년 3월 개교하는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25개 대학을 최종 설치인가했다. 인가된 대학은 서울권역 15개 대학, 지방 10개 대학으로 지난 2월 예비 인가를 받은 뒤 6개월간의 심사를 거쳐 로스쿨 인가 대학으로 확정된 것이다.
총 입학정원은 2000명이며 대학별 입학정원은 서울대 150명, 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 120명 등 예비인가 당시 배정받았던 입학정원과 동일하다.


▲ 머스랭 교수는 프랑스 명문 파리정치대학(The Institut d'Etudes Politiques de Paris)경제학과 교수이자 이 대학 국제경제연구소(The Groupe d'Economie Modiale·GEM)소장을 맡고 있다. / 조선일보 DB "결렬의 영향이 현재로서는 크지 않지만… 글쎄, 몇 달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국제 통상(通商)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파트리크 메슬랭(Messerlin·64) 교수는 'DDA 협상 결렬이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이어 "무역전쟁", "심리적 공황 상태", "무역체제의 수렁" 같은 표현을 쓰면서 깊은 우려를 표했다.
파리정치대학 경제학과 교수인 그는 프랑스 경제학자 중에서는 보기 드물게 '자유무역'을 주장한다. 그는 또한 WTO로 대표되는 '다자주의'가 무역 장벽 철폐에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믿는다. 지난 18일과 19일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메슬랭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WTO 협상 결렬이 처음은 아니므로 이번에도 국제 무역체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는데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분석이죠. 현재의 무역체제는 매우 취약해 보호주의로 회귀할 가능성도 있어요. 세계 GDP와 무역의 95%를 차지하는 34개 주요 국가들은 상당히 낮은 관세를 공산품에 부과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중 현재의 관세율을 앞으로도 유지하겠다고 약속한 곳은 EU·미국·일본·중국·캐나다·대만·홍콩·마카오뿐이라는 것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나머지 26개국은 WTO 협정에 아무런 저촉 없이 현재 8% 수준의 공산품 실행 관세율을 28%(허용 최고치인 양허관세율)까지 올릴 수 있습니다. 3배 이상이죠."
―어떤 위험이 있는지 시나리오를 말해주시죠.
"경기 침체와 정치적 위기가 중첩되면 무역전쟁으로 비화(飛火)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중국의 중앙 권력은 중국의 여러 지역에서 정치적 도전을 받고 있고, 러시아와 그루지야는 깊은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정치적 위기는 심리적 공황 상태를 불러올 수 있고, 여기에 세계 경제 침체까지 겹치면 지금까지 추진해온 무역 자유화가 훌쩍 후퇴하면서 급격한 관세 인상을 불러올 수 있어요. 이렇게 된다면 기존의 무역체제는 깊은 수렁에 빠질 겁니다."
―위험을 피하려면 DDA 성공이 필요하단 거죠?
"그렇습니다. 올림픽 후 먹구름이 몰려오게 되는 중국 경제나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EU의 경기 침체 조짐을 고려해 보십시오. 이미 도전은 시작됐으니 DDA가 제공할 세계 무역체제에 대한 확실성은 세계 경제에 꼭 필요합니다."
―DDA 결렬에 따른 피해자는 누구인가요?
"심리적 공황 상태의 시나리오를 차치하고라도 이미 많은 피해자가 발생했죠. 우선 전 세계 제조업자들은 절실히 필요로 하는 세계무역체제에 대한 확실한 보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또 개발도상국의 제조업자들은 지난 수십년간 자국 공산품에 대한 선진국의 차별적인 높은 관세율을 제거해 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이번 협상 결렬로 일단 해결이 물 건너 갔죠. 개도국이나 신흥 경제권의 농민 역시 선진국의 농산품 관세와 국내 보조금을 낮출 수 있는 기회를 놓쳤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의 서비스 공급업자들은 차별받지 않고 외국 시장에 더욱 쉽게 접근할 계기를 확보하지 못했고요."
―선진국 농민들은 이번 협상 결렬의 수혜자 아닌가요?
"단기적으로는 수혜자이죠. 선진국의 농업정책에 의해 보호받고 있는 그들은 다자협상 과정에서 농업 개혁 압력을 받아왔는데, 이번에 성공적으로 뿌리쳤으니까요. 하지만 가난한 시민들의 세금으로 선진국 대규모 농가를 지원하는 일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습니다. 앞으로 각국 내부에서 터져 나올 농업 개혁 요구는 막아내기 어려울 겁니다. 선진국 농민들은 대규모 보조금과 높은 보호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중장기 전망을 해주시죠. WTO의 존폐(存廢)를 포함해서….
"물론 당분간은 FTA를 위주로 하는 양자 협상에 대해 많은 논의가 뒤따르겠죠. 하지만 지난 18개월 동안 미국 대선 캠페인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양자 협상의 타결과 비준 그리고 이행은 매우 힘듭니다. 많은 경우 이런 협상은 비준 이전에 이미 상당한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WTO와 GATT는 그 동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생존 능력을 보여 왔어요. WTO는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죽이기 힘들 겁니다. 왜냐하면 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체제만이 무질서와 혼돈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DDA '도하 개발 어젠다(Doha Development Agenda·일명 도하라운드)'의 약자. 2001년 11월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제4차 각료회의에서 합의돼 시작된 새로운 다자간(多者間) 무역협상을 뜻한다. 당초 협상 시한으로 잡았던 2004년 말을 3년 이상 넘겼지만 아직 타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7월 제네바에서 열린 주요국 각료회의에서 타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지만, 이마저 결렬돼 "DDA가 결국 실패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자주의·양자주의 무역 문제에서의 '다자주의(多者主義)'란 무역 장벽 철폐 등을 위해 다수의 나라가 세계수준의 협의체를 두고 규범·절차를 만들어 이를 준수하도록 하자는 접근방식을 뜻한다. 우루과이라운드나 DDA 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이와 대조되는 '양자주의(兩者主義)' 혹은 '지역주의(地域主義)'란 자유무역협정(FTA)처럼 두 나라, 혹은 특정지역의 여러 나라가 무역협정을 맺고 이를 통해 무역 장벽을 낮추자는 접근방식을 의미한다.

시마의 경력은 순탄치 않았다. 지방으로 좌천되거나 자회사로 밀려나는 등 좌절을 겪었으며, 공작에 휘말려 좌초될 위기도 있었다. 머리가 뛰어나거나 업무 수완이 특출나게 탁월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 톱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늘 대의(大義)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파벌·상사의 사적(私的) 이익과 기업의 공적(公的) 이익이 충돌할 때 그는 항상 후자를 선택했다. 그 결과 국지적으로는 숱한 상처를 입고 불이익도 당했지만, 이것이 결국 그를 최종적인 승리자로 이끌었다.
시마 시리즈엔 그 시대마다 기업 현장에서 펼쳐지는 뜨끈뜨끈한 화두(話頭)가 담겨있다. 그가 과장이던 1980년대는 일본 경제가 버블호황을 구가하며 해외의 부동산·기업·그림 등을 사들이던 시대였다. 시마 과장은 교묘한 정보전을 펼치며 미국 영화사를 인수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 시마가 부장으로 승진한 1990년대는 버블이 꺼지고 일본이 장기 불황을 겪는 시기다. 시마 부장은 구조조정과 감원의 악역도 맡고 부실 자회사 재건 등의 임무를 담당하며 실적을 쌓는다. 2002년 임원이 된 이후엔 주로 인도·중국 등의 해외 사업 쪽에서 활약하며 식어버린 성장 에너지를 해외에서 찾는 전략을 주도한다.
시마는 작가 히로카네씨의 만화적 분신이다. 작가는 자신과 나이(1947년), 출생지(야마구치현), 출신 대학(와세다)이 같은 주인공을 창조해 '일본 주식회사'의 성장사(史)를 흥미진진하게 그렸다. 실제로 작가는 기업 현장에서 활동하는 대학 동기생들을 취재해 그들의 육성과 생생한 경험을 만화에 담는다고 한다.
▲ 1947년생. 와세다대학 법학부
▲가족 관계: 딸 하나를 둔 이혼남
▲특기는 영어, 취미는 일
▲25년간 단행본 53권 발간돼 3000만권 판매
▲골프 게임, 파친코 게임 등의 캐릭터
▲건강보조식품 '시마 고사쿠 접대중'의 캐릭터
▲'시마 고사쿠에게 배운다' 출판 시리즈
▲분카(文化)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DJ출연
(6월 13일·다른 사람이 시마의 대역으로)
▲니혼TV에서 드라마화
▲공식 홈페이지 http://shimakosaku.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