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 : 1 : 2 : 3 : 4 : 5 : ... 222 : Next »

남탕과 여탕을 함께 즐겨?

명품쌀·사케·온천으로 유명한 니가타


스키보다 더 푸짐한 '애프터 스키' 메뉴들


일본 스키 여행에선 스키의 재미를 드높여주는 즐길 거리가 푸짐하게 따라붙는다. 신선한 자연설에서 속도전을 즐긴 뒤 맛보는 뜨거운 온천욕, 맛깔스런 정찬(가이세키)과 식사에 곁들인 일본식 청주(사케) 몇 잔, 이른바 '애프터 스키'다. 니가타현은 온천의 고장이자 명품쌀 고시히카리 생산지이면서, 순하고 담백한 맛의 청주 생산지로 이름 높다. 어느 스키장을 찾더라도 한자리에서 밥맛, 술맛, 뜨거운 맛을 두루 즐길 수 있다.

⊙ 노천탕에서 감상하는 폭설 속 산줄기 - 온천

스키를 탄 뒤 빼어난 경관을 굽어보며 온천욕을 즐기기엔 묘코고원 아카칸 스키장 중턱에 자리한 아카쿠라 관광호텔 대온천탕이 제격이다. 해발 1500m인 리프트 정상과 750m인 스키베이스 중간, 해발 1000m 지점에 들어앉은 호텔 별관 온천탕이다. 지난달 개장한 깨끗한 대온천탕이다. 실내 온천탕에 앉으면 대형 유리창을 통해 펼쳐지는, 눈 맞는 삼나무숲 등 바깥 풍경이 아늑하게 다가온다. 욕실에 딸린 노천탕에서의 풍경은 말할 나위 없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내려다보는 폭설 속의 광활한 산줄기와 슬로프는 환상적이다. 향 짙은 삼나무로 치장한 사우나도 딸려 있다. 본관 전시실에선 70년 전 스키장 풍경과 당시 방문객들이 남긴 흑백사진들을 감상할 수 있다.

온천의 수질을 따지자면 단연 도카마치의 마쓰노야마 온천이다. 효고현의 아리마 온천, 군마현의 구사쓰 온천과 함께 '일본 3대 약탕'으로 꼽히는 염천이다. 화산지대 온천이 아니다. 오랜 세월 땅속에 짠 바닷물이 스며들어 고여 있다가 용출되는 간헐천이다. 마을에서 바다까지는 40㎞ 거리. 해발 350m 지점이다. 1896년 문 열어 4대째 운영중인 지토세온천여관의 주인 야나기 야스지는 "지금 솟는 바닷물은 1000만년 전 이곳이 바다였을 때 갇혀 있던 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상처 치료에 특효가 있다는 이 온천 원탕은 다카노유라는 이름으로도 일컬어진다. '다카'는 매를 뜻한다. 700년 전, 날개를 다친 매가 날아와 늘 같은 자리에 앉아 물에 날개를 적시는 것을 보고 이 온천을 발견했다고 한다. 실개천이 흐르는 길옆에 원탕이 있고, 여기서 솟는 온천수를 아홉개의 여관에서 나눠 쓴다. 용출 온도는 무려 섭씨 97도. 이를 식혀서 욕조에 넣는다. 노천탕에 몸을 담그면, 물을 맛보지 않더라도 바닷물과 같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몸도 가볍고 마음도 가벼워진다. 마쓰노야마는 '일본인의 고향 100선'에 선정된 작고 한적한 시골 마을이다. 계단식 논과 미인림이라 하는 너도밤나무숲이 시골 마을의 정취를 돋워주는 곳이다.

유자와마치의 에치고유자와역 주변엔 전통온천 거리가 형성돼 있다. 거품탕·노천탕·사우나를 갖춘 공동욕탕 5개가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 설국 > 을 집필하며 즐겼다는 야마노유, < 설국 > 의 여주인공 이름을 딴 고마코노유도 있다. 에치고유자와역 앞엔 누구나 들러 발을 담글 수 있는 족탕이 있다.

여관에 딸린 온천에선 매일 시간을 정해 남탕과 여탕을 바꾸는 곳이 많다. 묘코시의 온천 소믈리에 도모마 가즈히로(44)는 "한 손님에게 두 스타일의 욕탕 체험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며 "아침저녁으로 달라지므로 조심하시라"고 말했다.

⊙ 입맛 없고 반찬 없어도 밥맛 나는 고시히카리 쌀밥 - 먹을거리

니가타현은 일본에서 대표적인 쌀 생산지다. 밥맛 좋기로 이름난 고시히카리가 니가타 특산 품종이다. 대부분의 여관들에서 고시히카리로 지은 쌀밥을 낸다. 고시히카리란 밥의 찰기(고시)와 윤기(히카리)를 뜻한다. 이름난 만큼이나 밥맛이 정말 좋다. 니가타에 머무는 동안 밥맛 덕에 식사를 거르는 일이 없었을 정도다. 값은 생각보다 비싸다. 1등품이 2㎏에 1800엔(약 2만2000원)이니, 국내 보통 쌀의 두세 배 가격이다. 그래도 불티나게 팔려 쌀이 모자랄 지경이라고 한다. 고시히카리 중에서도 우오누마에서 생산한 것을 최고로 친다. 찰기와 윤기가 더하다고 한다.

귀한 손님에게 고시히카리를 구해 대접하는 걸 기본 예의로 친다. 여관에서 정찬으로 내는 '가이세키' 요리에도, 돈가스를 간장조림한 뒤 밥에 얹고 간장을 뿌려 내는 니가타식 타레가스돈덮밥에도 고시히카리 밥을 곁들여야 최고로 친다. 들일할 때 새참으로 먹던, 김으로 싼 주먹밥을 재현한 이른바 폭탄주먹밥도, 쑥과 쌀로 만든 떡을 조릿대 잎에 싸서 내는 조릿대경단(사사단고)도 마찬가지다.

해산물로는 방어·대게·분홍새우·연어가 유명하다. 말린 연어를 썰어 술에 절여 부드럽게 만든 연어포는 전통적인 술안주다. 니가타 지역은 일본에서 최고의 폭설지로 꼽힌다. 눈이 많은 만큼 음식도 겨울나기에 요긴한 저장식이 발달했다. 버섯·참마·메밀국수(소바) 등이 유명하다. 메밀국수엔 후노리라는 해초를 섞어 넣어 면을 뽑는다. 도카마치에서 맛볼 수 있는 다나다나베는 이 지역의 계단식 논(다나다)에서 난 쌀로 만든 누룽지와 버섯을 곁들여 내는 전골. 가구라난반(매콤한 피망)을 쌀과 발효시켜 만든 소스(시오노코)를 넣어 먹는다. 묘코 지역엔 두부·버섯·배추와 메밀가루를 반죽해 떼어 넣어 익혀 먹는 기노코나베도 있다. 국물 맛이 좋다. 갓 만들어낸 두부를 공처럼 둥글게 떠낸 오보로도후(두부)도 묘코 지역 명물이다. 제삿날 친척들이 모이면 된장국에 오보로도후를 넣어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 물처럼 순하고 담백한 맛 - 니가타 청주(사케)

니가타는 일본 청주(사케)의 본고장이다. 96개 양조업체에서 1000여종에 가까운 사케 브랜드를 만들어낸다. 종류가 많은 만큼 맛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알코올 도수는 대개 14~17도다. 모처럼의 일본 여행길에, 아무 사케나 덥석 사 맛볼 수는 없는 일. 들러볼 만한 곳이 신칸센 에치고유자와역 안에 있다. 사케 체험장 혼슈칸이다. 니가타의 96개 양조회사가 각각 내놓은 대표 사케들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시음코너에서 500엔을 내면 바꿔주는 코인 다섯개로, 자동판매기에서 다섯가지 사케를 골라 마셔볼 수 있다. 입맛에 맞는 사케를 판매코너에서 구입하면 된다. 시음코너 구석에 '전달의 인기 사케 순위'가 걸려 있다. 지난 12월의 경우 구보타가 1위, 고시노간바이가 2위, 고시노우메뉴가 3위, 핫카이산이 4위를 차지했다.

니가타시에선 해마다 스키철인 3월 둘쨋주 토·일요일 '사케노진'이라는 술박람회를 연다. 사케로 진을 친다는 뜻이다. 2000엔을 내고 시음용 잔 하나를 받아들고 들어가면, 니가타현에서 나온 수백종의 사케를 마음대로 맛볼 수 있다. 한잔 두잔 맛보면서 대취하는 이들이 많다. 이틀이면 어지간한 사케는 다 맛볼 수 있다지만, 조심해야 한다. 종종 앰뷸런스에 실려나가는 경우도 있으니.

니가타 여행쪽지
2월까지 한국인 특별 우대

◎ 나리타공항에서 JR전철 나리타 익스프레스로 도쿄역까지 50분(승차권·특급권 2940엔). 도쿄역에서 JR전철 조에쓰 신칸센 타고 에치고유자와역까지 1시간17분(5980엔). 대한항공은 인천공항~니가타공항 비행편을 매일 1편씩 왕복 운항한다. 인천에서 저녁 6시 출발, 니가타에서 아침 9시30분 출발. 2시간 걸림.

◎ 니가타현 도카마치 마쓰야마 온천마을 에선 방문객들 대상 전통문화 체험행사 를 벌인다. 너도밤나무 숯 만들기, 전통 도롱이 차림에 눈신발(간지키·일종의 설피)로 눈길 산책하기, 전통 화로 체험, 버섯 채취 등. 2200엔.

◎ 니가타현에서는 2월28일까지 스키장·숙박시설·온천·식당·주점 등과 연계해 한국인 여행자 에게 각종 혜택을 주는 행사를 진행중이다. 예컨대 가맹 호텔에 숙박하는 손님에게 스키장 리프트 교환권이나 식당 이용권, 명품 사케 할인권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레드캡투어·모두투어·브라보재팬 등 10개 여행사를 통해 예약할 수 있다. 문의 니가타현(www.niigata.or.kr) 서울사무소 (02)773-3161.

"순하고 담백한 게 니가타 사케의 제맛"
사케 소믈리에 이구치 도모히로 인터뷰

니가타현 에치고유자와의 후타바 온천호텔 식당. 사케 소믈리에 경력 7년의 이구치 도모히로(37)를 만났다. 그가 니가타의 유명 브랜드 핫카이산, 유자와지역의 술인 조젠미즈노고토시, 그리고 마키하타 세 종의 술을 각각 잔에 따르며 말했다.

"사케는 기본적으로 단맛과 쌉쌀한 맛, 강한 향과 약한 향으로 나뉜다. 네 가지가 결합해 다양한 맛과 향의 사케가 나온다." 와인 분류와 비슷하다. 그는 "니가타 사케는 다른 지역 술에 비해 맛과 향이 밋밋할 만큼 순하고 담백한 게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일반인들에겐 이런 분류보다 '준마이'니 '다이긴조'니 하는 재료 및 정미 정도에 따라 나뉘는 분류법이 익숙하다. 준마이는 순미, 즉 쌀과 누룩·물로만 만들었다는 뜻이다. 보통 혼조슈는 향을 강화하기 위해 주조용 알코올을 섞는다. 긴조는 쌀을 정미할 때 40%를 깎아낸 것을 가리킨다. 그는 "거친 껍질 부분을 깎아내고 순 탄수화물만으로 담근 술을 알아준다"고 말했다. 50%를 깎아낸 것이 다이긴조다. 일부 주조회사는 70%를 깎아낸 쌀로 담가 '초특산품'이란 이름으로 고가의 사케를 내놓기도 한다. 준마이 다이긴조, 준마이 긴조, 준마이, 혼조슈 등으로 나뉘는 술의 등급이 이래서 나온다.

술병 색깔을 보고도 술의 등급을 알 수 있다. 대체로 싼 술은 투명한 병에, 고급 술은 어두운 빛깔의 병에 담는다. 자외선을 차단해 숙성이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긴조급 사케는 초록색 병을, 다이긴조는 검은색 병을 주로 쓴다. 도모히로는 "사케는 보통 한달간 발효시켜 1년 정도 숙성시키는데, 완성된 즉시 마실 때 가장 맛이 좋다"며 "그 이상 숙성되면 맛이 바뀐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술의 재료인 쌀이다. 50~70%까지 깎아낼 수 있을 만큼 강도를 지닌 쌀이 필요하다."

니가타는 밥맛 좋은 고시히카리 쌀이 유명하지만, 술을 담그는 덴 쓰지 않는다. 양조용 쌀은 간사이 지역에서 생산된 야마다니시키 품종을 주로 쓴다. 최근엔 니가타에서 고시탄네이란 양조용 쌀을 개발해 쓰고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

도모히로는 "사케는 보통 17~20도의 상온으로 마시는 게 가장 맛있다"고 말했다. 데워 마실 땐 42도 정도가 알맞다. 그는 "향이 순한 것은 상온으로, 맛과 향이 강한 것은 데워 마실 때 제맛이 난다"고 조언했다. 복어 지느러미를 구워 곁들이는 이른바 히레사케에 대해 그는 "맛의 변화를 위해 재미로 시작된 음주법이지, 일본 전통 방식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케의 맛과 품질을 분석하고, 고객 취향에 따라 추천해주는 일을 하는 사케 소믈리에는 니가타현에만 5000여명이 활동중이다.

Posted by Takumi

2010/02/04 20:01 2010/02/04 20:01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72

KT발 국제전화 요금경쟁 '점화'

국제전화 1위 사업자인 KT가 국제전화 요금 인하에 나서면서 국제전화 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관심이 쏠린다.

국제전화 시장는 해외여행과 비즈니스 출장객들이 많아지면서 수요는 많아지고 있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많아 그동안 가격 경쟁이 치열했다. 또 가격이 저렴한 인터넷전화(VoIP) 서비스가 국제전화 수요를 계속 흡수하고 있어 성장률이 높지 않은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KT가 전향적으로 가격 인하를 단행함으로써 또 한 차례 가격 경쟁을 예고하고 나섰다. 이익률이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국제전화 시장에서 KT가 공격적으로 움직임에 따라 경쟁업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KT는 지난 21일 휴대폰으로 국제전화를 많이 이용하는 고객을 위해 휴대폰 요금(18원/10초)으로 국제전화를 할 수 있는 요금제(001모바일파워)를 출시했다.

이 요금제를 이용하면 국제전화를 많이 거는 미국, 일본, 중국, 홍콩 등 주요 20개국의 유선전화로 걸 때 분당 108원(10초당 18원)으로 통화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중국, 캐나다, 홍콩, 태국, 싱가포르 등 6개국에서는 휴대폰으로 걸 때도 분당 108원이 적용된다. 이통사에 관계없이 어느 휴대폰이나 가입해 이용하면 된다.

KT 관계자는 "휴대폰으로 거는 국제전화 통화량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고객에게 혜택을 더 많이 드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쟁업체 '수익성 악화될까' 긴장

KT가 이번에 내놓은 분당 108원 요금은 한국케이블텔레콤(KCT)의 분당 97원이나 온세텔레콤의 분당 98원보다는 여전히 비싸지만 분당 최저 144원(미국)에서 702원(중국) 수준인 SK텔링크에 비해서는 저렴하다.

그래서 이번 요금제는 사실상 SK텔링크를 정면으로 겨냥한 요금제라는 평가가 나온다. SK텔링크는 '00700'이라는 브랜드로 지난 1998년 국제전화 사업을 시작해, 지난해 매출 3천억원을 돌파하는 등 KT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사업자다.

국제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 관계자는 "KT의 이번 요금제는 휴대폰 발신 이용자에 혜택을 많이 줬다는 점에서 SK텔링크에 미치는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SK텔링크는 "휴대폰 발신이 많긴 하지만, 유선 전화로 거는 수요가 많지는 않고, 유무선 모두 분당 108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국가는 6개국에 한정돼 있기 때문에 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라고 평가 절하했다.

KCT 관계자 역시 "100원 미만의 최저 요금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 KT의 요금 수준이 위협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국제전화 시장은 워낙 요금에 민감한 이용자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파급효과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제전화 사업을 하는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KT의 움직임에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광고 이외의 다양한 고객 마케팅을 통해 국제전화 이용자들을 공략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1위 업체가 나서서 요금경쟁에 나선 이상, 수익성 저하는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의 특성상 한 업체가 요금을 내리면 경쟁업체 요금 수준도 당연히 하향 조정될 수밖에 없다"며 "당장 그러지는 않겠지만 수익성이 어느 정도 악화될 것은 분명하다"고 전망했다.

국내 국제전화 시장 규모는 인터넷전화를 통한 국제전화를 제외하고 약 8천~9천억원 규모로 추산하고 있다. 이 중 KT의 시장점유율은 50% 정도로 추산된다. 통합LG텔레콤(옛 LG데이콤)과 SK텔링크가 점유율 20%대를 유지하며 그 뒤를 잇고 있다.

Posted by Takumi

2010/02/04 19:59 2010/02/04 19:59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71

그룹 포미닛 멤버 현아가 다이어트 비법을 공개했다.
현아는 최근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 시절에는 지금보다 17㎏가 더 쪘었다"고 밝혀 출연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인터넷 게시판마다 감량 전 현아의 통통하고 귀여운 어린 시절 사진과 신곡 '체인지' 무대의 완벽한 바디라인을 비교한 사진들이 올라와 다이어트 비법에 많은 관심이 모아졌다.




당시 방송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한다"고 몸매 관리법을 귀띔했던 현아는 엄청난 체중감량에 성공할 수 있었던 혹독한 다이어트 비법으로 '밀가루 음식과의 절교'를 꼽았다.

이에 현아의 소속사 측은 "현아는 밀가루 음식 등이 주를 이루는 각종 분식들을 일절 금했으며 음식은 조금씩 자주 먹는 습관을 들였다"며 "또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되, 어렸을 때부터 춤 추는 것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격렬한 춤 연습을 통해 즐기듯 다이어트를 한 것이 주요 비법"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아가 소속된 포미닛은 성공적인 대만 프로모션을 마치고 후속곡 '체인지'로 활동 중이다.

Posted by Takumi

2010/02/01 12:28 2010/02/01 12:28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70

(上) 세기의 승부사 이병철
새 사업 진출땐 90가지 넘는 사항 직접 점검
철저한 '준비 경영'
반대 뚫고 반도체사업, 30년 만에 克日
'창조 경영' 토대 일궈

"기업가는 기업을 구상해 그것을 실현시키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면서 새로운 기업을 단계적으로 일으켜 나갈 때 더 없는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의 흥분과 긴장과 보람,그리고 가끔 겪는 좌절감은 기업을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

1986년에 펴낸 '호암자전'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밝힌 기업가 상(像)이다. 제일제당,제일모직의 잇따른 성공으로 한국 최고의 거부가 됐음에도 호암의 관심은 돈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대 후반에 사업의 길로 들어선 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일으켰다.

◆그룹 명운 걸고 반도체 사업 진출


"모두 식당에 모이라고 해." 1982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호암은 미국 방문에 동행한 임직원들을 스탠퍼드 코트 호텔 식당으로 불러모았다.

갑작스러운 호출이었다. 임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회장의 호출이 반도체 사업 건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인데 왜 회장은 그리 집착을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도 문제지만,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암은 자리에 앉자마자 전자부문 임직원들의 패배의식부터 질타했다.

도대체 일본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호통이었다. 호암은 이날 오랫동안 준비해온 결심을 마침내 공식화했다. "세계 시장을 놓고 우리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일본을 이길 자신이 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 "

당시 호암의 나이 72세.한 차례 위암수술을 받고 고희를 넘긴 나이였지만 그룹의 명운을 걸고 또다시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선 것이다. 젊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줬던,그리고 항상 배우고자 했던 '선행(先行)의 나라'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승부수였다.

◆21세기 창조경영으로 승화된 20세기 준비경영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10년 1월8일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현장.호암의 아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생애 처음으로 CES를 찾아 내외신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넘어섰다. 그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표정에는 '일본을 넘어서라'는 선친의 유지를 현실로 만들어낸 데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는 듯했다.

호암이 타계할 당시 14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200조원을 넘어섰고,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일본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는 경영실적을 올렸다. 이날 이 전 회장도 "자기 위치를 정확히 쥐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며 호암과 비슷한 얘기를 강조했다.

호암이나 이 전 회장이 동시에 언급한 '위치'라는 단어에는 현상에 안주하라는 의미가 아닌,새로운 미래와 비전에 대한 인식과 도전 과제를 정립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않되,자신의 앞날은 스스로 개척해서 찾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호암의 정신적 유산이 대(代)를 달리해서도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철저한 준비와 실행전략 덕분이다. 호암이 생전에 손을 댄 사업 중 판단이나 시행착오로 실패한 사업은 하나도 없다.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 같은 경우는 정치적 변수가 빚어낸 돌발적 결말이었다.

호암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 90가지가 넘는 사항을 치밀히 점검하고,100% 자신이 없으면 가지 않았다. 전자에 이어 금융 조선 엔지니어링 화학부문이 단기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전에 충분한 시장조사와 내부 역량 점검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21세기 '창조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의 글로벌 경영은 한국 최대 역동기를 돌파했던 20세기형 '준비경영'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조일훈/김용준 기자 jih@hankyung.com

숫자로 본 삼성그룹(2008년말 기준)


매출:191조원
순이익:11조7000억원
총자산:318조원
총투자:27조원
종업원:17만명(해외포함 27만명)
그룹 내 박사수:4865명
계열사:64개
직수출:799억달러
대한민국 전체 수출비중:18.9%
시가총액:192조원
(상장사 전체의 23.2%, 2009년 8월 말 기준)
해외 거점:68개국 477개사무소 및 지법인
월드베스트 제품(세계시장 점유율 기준): 21개

Posted by Takumi

2010/02/01 11:46 2010/02/01 11:46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69

이병헌 소녀시대 싱크로율 100프로

Posted by Takumi

2010/01/31 18:33 2010/01/31 18:33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68

김치찌개의 명가들은 공통적으로 김칫소로 배추를 채우지 않았다. 찌개를 끓이면 국물이 깔끔하지 않아서다.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이 기본양념. 젓갈도 건더기가 없는 액젓만 쓴다. 숙성 기간은 1년을 넘지 않는다.

‘굴다리식당’은 경기도 파주에서 재배한 배추만 쓰고 멸치 액젓·고춧가루·다진 마늘만 넣는다. 파주의 저장고에서 30~45일 숙성한다. ‘장호왕곱창’은 새우젓·고춧가루·다진 마늘·황석어젓국을 넣고 가게 옆의 저장고에서 1년간 숙성한다.

‘광화문집’은 배추를 썰어서 절인다. 절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다. 젓갈과 액젓은 일체 안 넣고, 오직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만 넣어 익힌다. ‘원조 조아저씨 김치찌개와 막겹구이’는 고춧가루와 다진 마늘에 새우젓·멸치액젓을 더하고, 상온에서 겨울에는 1달, 여름에는 4~5일 익힌다.


▶굴다리식당

‘굴다리식당’의 김치찌개는 냉면 그릇에 담겨 나온다. 1977년 서울 마포구 도화동 굴다리 밑에 가게 문을 열었을 당시, 인근에는 인쇄 공장들이 즐비했고 지하철 공사도 한창이었다. 공장과 공사 현장의 인부들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소박한 밥집‘굴다리식당’을 찾았다.

하루는 주인 김정숙(76)씨가 단골손님들에게 서비스로 특별 메뉴를 내놓았는데 그 인기가 대단했다. 메뉴 중 하나였던 설렁탕의 소고기 사골 육수에 김치와 돼지고기를 넣고 끓인 김치찌개가 그것이다. 결국 단골들의 간청에 따라 김치찌개를 주 메뉴로 팔기 시작했다. 빨리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이들을 위해 미리 끓여 놓았다 내놓았다. 푸짐한 양은 기본이었다. 이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육수는 소고기 사골과 잡 뼈를 밤새 푹 고아 만든다. 여기에 돼지앞다리 살과 목살·김치· 특제 양념장을 넣고 2시간 동안 끓인다. 김치 국물은 색깔을 내기 위해 한 국자 정도만 넣는다. 매일 아침 20인 분의 큰 솥 6개에 김치찌개를 끓여 놨다가 여러 냄비에 나눠 담는다.

주문이 들어오면 한 번 팔팔 끓여 냉면 그릇에 담아낸다. 사골 육수 넣고 오래 끓여 낸 김치찌개 국물 맛은 깊고 진하다. 비계가 적당히 섞인 두툼한 돼지고기에 김치 맛이 알맞게 배어 있다. 이 진국 김치찌개가 무한 제공된다.

김치찌개 집 치고 밑반찬도 다양하다. 구운 김·달걀말이·총각김치·콩나물무침·부추무침·가자미조림이 나오는데 모두 골고루 맛있다. 특히 황해도 장단이 고향인 김 씨가 이북식으로 젓갈을 거의 넣지 않고 만든 총각김치는 깔끔하고 시원하다. 2003년부터 김 씨의 아들 이강우(53)씨가 몇 골목 떨어진 곳에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김치찌개 6000원, 02-712-0066(본점)·02-706-0323(분점).


▶장호왕곱창

1980년에 문을 연 ‘장호원곱창’은 가게 이름에서 보듯 원래 곱창집이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에는 곱창 장사가 시원치 않아 1대 주인 이종원(68)씨는 김치찌개를 메뉴에 추가했다. 양은 냄비에 시큼하게 익은 김치를 잔뜩 넣고 끓인 김치찌개는 점심 식사 손님들은 물론 저녁 술 손님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다.

10년 전, ‘성당 형님’인 이 씨로부터 가게를 인수한 2대 주인 김재하(66)씨는 김치찌개에 주력했다. 고향인 전북 고창에서 재배한 배추와 직접 빻은 고춧가루로만 김치를 담아 저장고에서 숙성시킨다. 이것이 1년 후에도 김치의 아삭함이 살아있는 비결이라고. 김 씨는 “김치찌개 매출이 전체 하루 매출액 중 3분의 2를 차지한다”고 말한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초강력 신 맛으로 유명하다. 주문을 하면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김치· 돼지 앞 다리 살·양파·파들이 조리되지 않은 상태로 담겨 나온다. 자작한 국물이 유난히 시뻘건 이유는 김치 국물에 소량의 맹물과 고춧가루·고추장·다진 마늘을 더한 때문이란다.

뚜껑을 덮고 센 불에 10분 정도 끓이면 양은 냄비가 폭발할 듯 끓는다. 김치 한 조각 씹으니 새콤하다. 국물을 떠먹으니 진저리를 칠 정도로 시다. 그런데도 얼큰한 뒷맛에 은근히 끌린다. 반찬은 달랑 김치 하나다. 그것도 찌개용 김치와 똑같은 것이다. 마니아들은 이것을 그냥 먹거나 찌개 속에 넣어 먹는다는데 일반 손님들에게는 무성의하게 느껴 질수도 있겠다. 김치찌개 6000원, 02-756-5070.


▶광화문집

‘광화문집’은 33년 전 그대로다. 허름한 식당 건물에서부터 빛바랜 간판, 낡고 닳은 식탁과 의자까지. 김치찌개 맛과 가격도 1977년 개업 이후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

“그때도 1인분에 5000원을 받았어요. 근데 비싸다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처음에는 술안주용으로 팔았거든요. 고기가 많이 들어가니까 셋이 와서 소주 안주로 찌개 하나 시키면 충분했지요.” 주인 노병복(67)씨의 말처럼 이 집의 김치찌개는 안주용으로 사랑 받아 왔다. 그래서 이 집에서는 찌개에 당연히 딸려 나온다고 여겨지는 공깃밥을 따로 판다.

김치국물과 맹물을 3대1 정도로 섞고 김치·두부·돼지 목살을 넣고 초벌로 끓여낸다. 찌개 국물은 매운 맛과 신 맛, 짠 맛이 조화를 이뤄 시원하고 칼칼하다.

노 씨는 “찌개국물은 찌개국물로 먹어야 제 맛”이라며 라면 사리도 판매하지 않는다. 돼지고기도 푸짐하게 들어가고 찌개 양이 많아 둘이 하나 시켜 먹어도 충분하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겉절이는 찌개용 김치와 똑같은 양념을 쓰고 채 썬 파만 추가해 만든다.

젓갈과 액젓이 일체 들어가지 않아 감칠맛은 덜하지만 찌개 속 김치와는 다른 싱싱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광화문집’에서 김치찌개만 주문하면 종업원 아주머니들이 어김없이 “달걀말이는?”하고 쏘아대듯 묻는다. 김치찌개와 함께 이 집의 대표 안주라는데 굳이 시켜먹을 만큼 특별한 맛은 아니다. 김치찌개 5000원·공기밥 1000원, 02-739-7737.


▶원조 조아저씨 김치찌개와 막겹구이

28년째 서소문동 직장인들의 점심을 책임지고 있는 김치찌개집이다. 1·4후퇴 때 월남한 부모님이 1982년에 문 연 가게를 아들 조문성(45)씨가 이어 받아 운영 중이다.

부모님의 '영일원' 시절에는 분식집에 가까웠다. 조 씨는 1990년에 가게를 물려받으면서 ‘백화점 식 메뉴’를 정리하고 김치찌개에 주력했다. 그는 “점심시간에 오는 직장인들 대부분이 김치찌개를 시켰다. 저녁시간에는 안주로 많이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대표 메뉴가 됐다”고 말한다.

이 집의 김치찌개는 살짝 부대찌개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스테인리스 냄비에 김치·돼지 앞 다리 살·두부·소시지·떡을 담는다. 소고기 육수에 김치 국물 대신 다대기를 풀어 냄비에 넉넉히 부어 낸다. 다대기는 소고기 육수·고춧가루·다진 마늘·다진 생강·새우와 조개를 말려서 간 것을 섞어 만든다. 젊은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2000년부터 어머니 표 김치찌개에 소시지와 떡을 추가했단다.

예전 맛을 그리워하는 이들을 위해 주문 전 미리 말하면 소시지를 빼주기도 한다. 하지만 소시지 들어간 조아저씨 김치찌개도 일반 부대찌개 보다 덜 텁텁하고 깔끔하다. 안주용 김치찌개는 김치찌개백반에 딸려 나오는 조밥 대신 찌개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준다. 김치찌개백반 6000원·김치찌개안주 2만 4000원(대), 1만 8000원(중), 1만 2000원(소), 02-752-1927.

Posted by Takumi

2010/01/30 16:13 2010/01/30 16:13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67

이스타항공그룹 이상직 회장
증권맨으로 출발 37세에 상장기업 인수, 6년 만에 14개 자회사 거느려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소년의 집은 가난했다. 한때 번창했던 아버지의 나전칠기 사업은 기운 지 오래. 경영을 맡은 큰형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년의 학비는 요구르트 배달을 하던 누나와 학교 선생님이던 작은 형이 번갈아가며 대줬다. 큰형은 숙식을 부담했다. 용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명문 전주고를 나왔지만 소년은 늘 궁핍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소년은 그런 현실이 싫었다.

“가난한 사람은 다 가난한 이유가 있는 거야.” 친했던 한 선배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동국대 경영학과)이 된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라면값이 없을 땐 친구들에게 밥 얻어먹기가 부끄러워 학교를 빼먹던 그였다. 가난이 싫어서 가출도 했었다. ‘먹기 위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했던 그에게 선배의 말은 ‘가난은 대물림 된다’는 충격적인 얘기로 들렸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니. 그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는 속울음을 쏟아내며 그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밤 새워 고민해도 선배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는 그날밤 인생의 목표를 새로 세웠다. ‘전공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분야로 나가리라. 그래서 쓰러진 가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20년 뒤의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세운 그는 대학 졸업 후 현대증권에 입사, 이름을 날리는 증권분석가가 됐다. 1990년대 IT붐을 맞아 증시에 투자한 돈을 수십 배로 불렸으며 37세의 나이에 상장기업(케이아이씨·플랜트 제조)을 인수한 뒤 6년 만에 회사 규모를 10배로 키웠다. 그가 2007년 10월 저비용항공(low cost carrier)사업에 진출,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행 첫 비행기를 띄웠다. 이렇게 날기 시작한 ‘이스타항공’은 2009년 12월 말레이시아 쿠칭과 일본 고치에 부정기 국제선을 취항시켰고 정확히 1년 만인 2010년 1월 7일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던 소년은 이제 케이아이씨, 삼양감속기(엘리베이터 동력전달기기 제조), 현대종합기계(압력분사기기 제작), 동명통산(자동차 고무부품 제조), 새만금관광개발(부동산개발), 이스타투자자문, 이스타벤처투자, 이스타항공 등 14개 회사를 이끄는 중견 그룹의 회장이 됐다. 이스타항공그룹 이상직(46)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조원을 달성, 20대 기업으로 진입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족쇄

이상직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1월 4일. 이날은 ‘103년 만에 처음’이란 폭설이 쏟아진 날이었다. 항공사로서는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날, 그를 만난 시각은 한창 붐빌 때인 오후 3시. 하지만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엔 쏟아진 눈폭탄 때문에 택시 한 대 오가지 않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서설(瑞雪)이죠. 새해 새 업무를 시작한 첫날 서설이 내렸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 회장은 103년 만의 천재(天災)를 상서로운 눈으로 해석하며 싱긋 웃었다. 그는 각진 네모꼴 얼굴에 우뚝 선 콧날을 갖고 있었다. 말투는 느리고 어눌했다. 한눈에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느닷없이 코끼리 얘기를 꺼냈다.

“인도에선 아기 코끼리를 길들일 때 한쪽 발에 족쇄를 채웁니다. 아기 코끼리는 족쇄로부터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립니다. 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말지요. 그런데 그 코끼리가 성장해 어른이 되면 충분히 족쇄를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하지만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족쇄를 깨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주인이 주는 건초와 땅콩을 얻어먹으며 대여섯 평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고 마는 거지요. 심지어 불이 나더라도 코끼리는 족쇄를 부수지 못하고 슬프게 울면서 타죽고 맙니다. 이 코끼리의 운명은 뭘까요. 결국 코끼리의 마음 아닐까요.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는 코끼리의 마음이 평생 굴욕적인 삶을 살게 만든 것입니다.”

이 회장은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부정적인 마음”이라고 했다. ‘난 할 수 없어’란 마음이 스스로의 족쇄가 돼서 성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아기 코끼리 같습니다. 벗어나려고 수없이 시도하고, 수없이 실패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예측하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9년 그는 평소의 ‘로망’이던 현대그룹에 지원서를 제출, 제1지망으로 현대증권을 택했다. 동기 2000명 중 20명이 현대증권에 입사했다. “경제적으로 쇠락한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한 목표에 가장 빨리 오르는 길은 금융시스템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증권시장은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찍으며 호황을 달리고 있었다. 억대 연봉자가 속출하면서 ‘1등 신랑감’으로 증권맨이 꼽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신출내기 증권맨에겐 먼 이야기였다. 영업부에 배속된 이 회장은 선배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며 투자 관련 공부를 기초부터 새로 시작했다. 그렇게 내공을 쌓은 뒤 ‘베팅’했다. 증권맨들에게 허용된 근로자주식저축 계좌를 개설한 것이었다.

“증권사 직원들은 주식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돼 있잖습니까. 그런데 당시 근로자주식저축은 증권맨들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1300만원을 갖고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년 뒤에 보니 계좌에 2억원이 들어있는 거예요. 수익률 1540%를 낸 거죠.”

이 회장은 “그때 복리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예를 들어 1년에 2배씩 10년간 수익을 낸다면 단리의 개념이죠. 하지만 복리로 따지면 첫 1년엔 2배로 동일하지만 2년째엔 4배, 3년차엔 8배, 4년 뒤엔 무려 16배로 차이가 벌어지지 않습니까. 이 개념을 적용하면 10배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워렌 버핏에게 길을 묻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는 유명한 벤처붐이 일던 1990년대 말. 이 회장이 선택한 종목은 벤처의 대명사라 할 만한 ‘엔씨소프트’와 ‘다음’이었다. 벤처 주식으로 “평균 10배가량의 순익을 냈다”는 이 회장은 이렇게 장만한 10배의 이익금으로 ‘프리코스닥’ 종목에 투자했다. 프리코스닥 역시 근로자주식저축과 마찬가지로 증권맨들에게 거래가 허용되었다. 이 회장은 20개 회사에 투자, 그중 2곳에서 또 한 번의 이익을 거뒀다. 그는 어떻게 투자 대상을 족집게처럼 고를 수 있었을까.

이스타항공 ‘스페이스호’의 내부. 우주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워렌 버핏입니다. 그분이 제 마음속의 ‘현인’이에요. 그분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분으로부터 투자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급을 예측하며 다른 투자자들의 심리까지 읽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모든 주식 뒤엔 회사라는 실체가 있다’는 겁니다. 주식은 그냥 종잇조각이 아니라는 간단한 논리죠. 다시 말해 ‘증시가 없어도 그 회사 주식을 사겠느냐고 물었을 때 사겠다는 대답이 나올 경우엔 그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버핏의 철학을 배운 뒤 기업의 순자산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게 됐다”고 했다. “주식을 사는 것은 그 회사를 사는 것이란 확고한 가치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보니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시장의 심리에 휘둘리지 않게 되더군요. 그렇게 하니까 투자 기법과 투자 마인드가 안정을 찾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장기투자로 이어졌습니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2001년 ‘㈜케이아이씨’란 플랜트 전문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제철이나 석유화학 플랜트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상장기업이다.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던 그는 회사 규모를 10배로 키워 2007년 8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그해 10월 ‘이스타항공’을 설립해 항공산업에 뛰어들었다.


10년 뒤 동양최대 항공사를 꿈꾼다

“왜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정 분야가 성장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저는 덤벼듭니다. 익숙한 분야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트렌드가 어느 분야로 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리더는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리더 자리를 내놔야 합니다.” 이 회장이 말을 이었다.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기존의 대형 항공사들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서비스·관광수요가 늘면 늘수록 트렌드는 저비용항공사가 될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 유럽 모두 저비용항공사가 주요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전체 동양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당시 제주항공(2006년 취항)과 한성항공(2008년 운항중단) 외엔 저비용항공이 없었어요. 그래서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이 회장은 프로펠러기가 주를 이뤘던 저비용항공 시장에 과감하게 보잉737기를 도입했다. 자동항법장치를 갖춘 신기종이었다. “항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사실 프로펠러기가 반드시 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바람이 불면 롤링(rolling)이 심해서 사람들이 의외로 불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잉737을 도입했습니다. 승무원 유니폼은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주문제작했습니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보다 싼값에 항공티켓을 판매하려 한 것입니다.”

이스타항공 김포~제주 간 가장 싼 요금은 편도 1만9900원. 요금체계는 8단계로 다양하지만 가장 비싼 것도 6만9900원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여기에 아이디어 하나를 추가했다. ‘추억’을 선물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각 항공기마다 스카이, 우주선, 어린왕자, 크루즈, 타임머신 등의 별명을 붙이고 그에 맞는 인테리어를 갖췄습니다. 예를 들어 스카이호의 천장엔 하늘과 구름이 그려져 있고 어린왕자호엔 칼을 찬 어린왕자가 승객을 향해 웃고 있습니다. 우주선호를 타시면 스페이스 셔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승무원이 승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드립니다. 승객들은 이스타항공을 타실 때마다 ‘새롭다,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비행 자체가 추억이 되는 거죠.”

독특한 서비스와 파격적인 가격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 노선에 취항한 지 정확히 1년 만인 지난 1월 7일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항공 산업은 초기투자가 많이 듭니다. 항공기를 마련하고, 사람을 뽑고, 승무원을 훈련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통 이 기간을 3년으로 잡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2년차인 올해부터 흑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0년엔 동양 최대의 항공사로 이스타항공을 키울 것입니다.”

가난이 싫다며 울던 소년이 사회생활 20년 만에 “2020년 20대 그룹에 진입하겠다”며 포효하고 있었다.

Posted by Takumi

2010/01/17 17:51 2010/01/17 17:51
Response
0 Trackbacks , 0 Comments
RSS :
http://ryoko13.maru.net/rss/response/1766

« Previous : 1 : 2 : 3 : 4 : 5 : ... 222 : Next »

블로그 이미지

頑張ろう!

- Takumi

Notices

  1. PROFILE

Archives

Authors

  1. Takumi

Calendar

«   2010/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Site Stats

Total hits:
54209
Today:
60
Yesterday:
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