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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 세기의 승부사 이병철
새 사업 진출땐 90가지 넘는 사항 직접 점검
철저한 '준비 경영'
반대 뚫고 반도체사업, 30년 만에 克日
'창조 경영' 토대 일궈

"기업가는 기업을 구상해 그것을 실현시키고 합리적으로 운영하면서 새로운 기업을 단계적으로 일으켜 나갈 때 더 없는 창조의 기쁨을 느낀다. 그 과정에서의 흥분과 긴장과 보람,그리고 가끔 겪는 좌절감은 기업을 해본 사람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

1986년에 펴낸 '호암자전'에서 고 호암 이병철 삼성 창업 회장이 밝힌 기업가 상(像)이다. 제일제당,제일모직의 잇따른 성공으로 한국 최고의 거부가 됐음에도 호암의 관심은 돈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20대 후반에 사업의 길로 들어선 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일으켰다.

◆그룹 명운 걸고 반도체 사업 진출


"모두 식당에 모이라고 해." 1982년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호암은 미국 방문에 동행한 임직원들을 스탠퍼드 코트 호텔 식당으로 불러모았다.

갑작스러운 호출이었다. 임원들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회장의 호출이 반도체 사업 건일지도 모른다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업인데 왜 회장은 그리 집착을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도 문제지만,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호암은 자리에 앉자마자 전자부문 임직원들의 패배의식부터 질타했다.

도대체 일본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는 호통이었다. 호암은 이날 오랫동안 준비해온 결심을 마침내 공식화했다. "세계 시장을 놓고 우리의 위치를 찾아야 한다. 일본을 이길 자신이 있다. 메모리반도체 사업에 진출한다. "

당시 호암의 나이 72세.한 차례 위암수술을 받고 고희를 넘긴 나이였지만 그룹의 명운을 걸고 또다시 일생일대의 도전에 나선 것이다. 젊어서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해줬던,그리고 항상 배우고자 했던 '선행(先行)의 나라' 일본을 넘어서겠다는 승부수였다.

◆21세기 창조경영으로 승화된 20세기 준비경영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2010년 1월8일 세계 최대 전자전시회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CES 현장.호암의 아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은 생애 처음으로 CES를 찾아 내외신 기자들 앞에 섰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을 넘어섰다. 그들이 쉽게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의 표정에는 '일본을 넘어서라'는 선친의 유지를 현실로 만들어낸 데 대한 자부심이 배어 있는 듯했다.

호암이 타계할 당시 14조원이던 그룹 매출은 지난해 200조원을 넘어섰고,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는 일본 경쟁 업체들을 압도하는 경영실적을 올렸다. 이날 이 전 회장도 "자기 위치를 정확히 쥐고 가야 변화무쌍한 21세기를 견뎌낼 수 있다"며 호암과 비슷한 얘기를 강조했다.

호암이나 이 전 회장이 동시에 언급한 '위치'라는 단어에는 현상에 안주하라는 의미가 아닌,새로운 미래와 비전에 대한 인식과 도전 과제를 정립하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무모하게 일을 벌이지 않되,자신의 앞날은 스스로 개척해서 찾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다.

호암의 정신적 유산이 대(代)를 달리해서도 성공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은 기업가 정신을 떠받치고 있는 철저한 준비와 실행전략 덕분이다. 호암이 생전에 손을 댄 사업 중 판단이나 시행착오로 실패한 사업은 하나도 없다.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 같은 경우는 정치적 변수가 빚어낸 돌발적 결말이었다.

호암은 새로운 사업에 진출할 때 90가지가 넘는 사항을 치밀히 점검하고,100% 자신이 없으면 가지 않았다. 전자에 이어 금융 조선 엔지니어링 화학부문이 단기간에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것은 사전에 충분한 시장조사와 내부 역량 점검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다. 21세기 '창조경영'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질주하고 있는 삼성의 글로벌 경영은 한국 최대 역동기를 돌파했던 20세기형 '준비경영'을 기반으로 탄생했다.

조일훈/김용준 기자 jih@hankyung.com

숫자로 본 삼성그룹(2008년말 기준)


매출:191조원
순이익:11조7000억원
총자산:318조원
총투자:27조원
종업원:17만명(해외포함 27만명)
그룹 내 박사수:4865명
계열사:64개
직수출:799억달러
대한민국 전체 수출비중:18.9%
시가총액:192조원
(상장사 전체의 23.2%, 2009년 8월 말 기준)
해외 거점:68개국 477개사무소 및 지법인
월드베스트 제품(세계시장 점유율 기준): 21개

Posted by Takumi

2010/02/01 11:46 2010/02/01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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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타항공그룹 이상직 회장
증권맨으로 출발 37세에 상장기업 인수, 6년 만에 14개 자회사 거느려

<이 기사는 주간조선 2089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소년의 집은 가난했다. 한때 번창했던 아버지의 나전칠기 사업은 기운 지 오래. 경영을 맡은 큰형이 갖은 노력을 다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년의 학비는 요구르트 배달을 하던 누나와 학교 선생님이던 작은 형이 번갈아가며 대줬다. 큰형은 숙식을 부담했다. 용돈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명문 전주고를 나왔지만 소년은 늘 궁핍했다. 자존심이 강했던 소년은 그런 현실이 싫었다.

“가난한 사람은 다 가난한 이유가 있는 거야.” 친했던 한 선배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대학생(동국대 경영학과)이 된 소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라면값이 없을 땐 친구들에게 밥 얻어먹기가 부끄러워 학교를 빼먹던 그였다. 가난이 싫어서 가출도 했었다. ‘먹기 위해’ 아르바이트 일자리를 전전했던 그에게 선배의 말은 ‘가난은 대물림 된다’는 충격적인 얘기로 들렸다.

‘죽어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살고 있는데 앞으로도 가난하게 살 수밖에 없다니. 그럼,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는 속울음을 쏟아내며 그날 밤을 하얗게 새웠다. 밤 새워 고민해도 선배의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그런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

photo 이상선 조선영상미디어 기자

그는 그날밤 인생의 목표를 새로 세웠다. ‘전공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분야로 나가리라. 그래서 쓰러진 가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20년 뒤의 목표까지 구체적으로 세운 그는 대학 졸업 후 현대증권에 입사, 이름을 날리는 증권분석가가 됐다. 1990년대 IT붐을 맞아 증시에 투자한 돈을 수십 배로 불렸으며 37세의 나이에 상장기업(케이아이씨·플랜트 제조)을 인수한 뒤 6년 만에 회사 규모를 10배로 키웠다. 그가 2007년 10월 저비용항공(low cost carrier)사업에 진출,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행 첫 비행기를 띄웠다. 이렇게 날기 시작한 ‘이스타항공’은 2009년 12월 말레이시아 쿠칭과 일본 고치에 부정기 국제선을 취항시켰고 정확히 1년 만인 2010년 1월 7일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겠다”며 주먹으로 눈물을 닦던 소년은 이제 케이아이씨, 삼양감속기(엘리베이터 동력전달기기 제조), 현대종합기계(압력분사기기 제작), 동명통산(자동차 고무부품 제조), 새만금관광개발(부동산개발), 이스타투자자문, 이스타벤처투자, 이스타항공 등 14개 회사를 이끄는 중견 그룹의 회장이 됐다. 이스타항공그룹 이상직(46) 회장은 “2020년까지 매출 10조원, 순익 1조원을 달성, 20대 기업으로 진입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족쇄

이상직 회장을 만난 것은 지난 1월 4일. 이날은 ‘103년 만에 처음’이란 폭설이 쏟아진 날이었다. 항공사로서는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는 운명의 날, 그를 만난 시각은 한창 붐빌 때인 오후 3시. 하지만 본사가 있는 서울 여의도엔 쏟아진 눈폭탄 때문에 택시 한 대 오가지 않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서설(瑞雪)이죠. 새해 새 업무를 시작한 첫날 서설이 내렸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됐으니 앞으로 좋은 일이 많이 있을 겁니다.” 이 회장은 103년 만의 천재(天災)를 상서로운 눈으로 해석하며 싱긋 웃었다. 그는 각진 네모꼴 얼굴에 우뚝 선 콧날을 갖고 있었다. 말투는 느리고 어눌했다. 한눈에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느닷없이 코끼리 얘기를 꺼냈다.

“인도에선 아기 코끼리를 길들일 때 한쪽 발에 족쇄를 채웁니다. 아기 코끼리는 족쇄로부터 벗어나려고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립니다. 하지만 끝내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포기하고 말지요. 그런데 그 코끼리가 성장해 어른이 되면 충분히 족쇄를 부숴버릴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하지만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는 어렸을 때의 기억 때문에 족쇄를 깨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주인이 주는 건초와 땅콩을 얻어먹으며 대여섯 평밖에 안 되는 공간에서 평생을 보내고 마는 거지요. 심지어 불이 나더라도 코끼리는 족쇄를 부수지 못하고 슬프게 울면서 타죽고 맙니다. 이 코끼리의 운명은 뭘까요. 결국 코끼리의 마음 아닐까요. ‘족쇄를 벗을 수 없다’는 코끼리의 마음이 평생 굴욕적인 삶을 살게 만든 것입니다.”

이 회장은 “인생의 가장 큰 장애물은 부정적인 마음”이라고 했다. ‘난 할 수 없어’란 마음이 스스로의 족쇄가 돼서 성공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처음엔 누구나 아기 코끼리 같습니다. 벗어나려고 수없이 시도하고, 수없이 실패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패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공으로 가는 길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성공을 예측하고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이 회장은 “현대그룹 창업자인 정주영 회장을 존경한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9년 그는 평소의 ‘로망’이던 현대그룹에 지원서를 제출, 제1지망으로 현대증권을 택했다. 동기 2000명 중 20명이 현대증권에 입사했다. “경제적으로 쇠락한 집안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할 사람은 나 자신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정한 목표에 가장 빨리 오르는 길은 금융시스템을 배우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당시 증권시장은 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찍으며 호황을 달리고 있었다. 억대 연봉자가 속출하면서 ‘1등 신랑감’으로 증권맨이 꼽히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신출내기 증권맨에겐 먼 이야기였다. 영업부에 배속된 이 회장은 선배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으며 투자 관련 공부를 기초부터 새로 시작했다. 그렇게 내공을 쌓은 뒤 ‘베팅’했다. 증권맨들에게 허용된 근로자주식저축 계좌를 개설한 것이었다.

“증권사 직원들은 주식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금지돼 있잖습니까. 그런데 당시 근로자주식저축은 증권맨들도 할 수 있었어요. 그래서 1300만원을 갖고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년 뒤에 보니 계좌에 2억원이 들어있는 거예요. 수익률 1540%를 낸 거죠.”

이 회장은 “그때 복리의 개념을 알게 됐다”고 했다. “예를 들어 1년에 2배씩 10년간 수익을 낸다면 단리의 개념이죠. 하지만 복리로 따지면 첫 1년엔 2배로 동일하지만 2년째엔 4배, 3년차엔 8배, 4년 뒤엔 무려 16배로 차이가 벌어지지 않습니까. 이 개념을 적용하면 10배의 성장을 이루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됐습니다.”


워렌 버핏에게 길을 묻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또 다른 승부수를 던졌다. 당시는 유명한 벤처붐이 일던 1990년대 말. 이 회장이 선택한 종목은 벤처의 대명사라 할 만한 ‘엔씨소프트’와 ‘다음’이었다. 벤처 주식으로 “평균 10배가량의 순익을 냈다”는 이 회장은 이렇게 장만한 10배의 이익금으로 ‘프리코스닥’ 종목에 투자했다. 프리코스닥 역시 근로자주식저축과 마찬가지로 증권맨들에게 거래가 허용되었다. 이 회장은 20개 회사에 투자, 그중 2곳에서 또 한 번의 이익을 거뒀다. 그는 어떻게 투자 대상을 족집게처럼 고를 수 있었을까.

이스타항공 ‘스페이스호’의 내부. 우주의 분위기를 연출했다.

“워렌 버핏입니다. 그분이 제 마음속의 ‘현인’이에요. 그분을 만나진 못했지만 그분으로부터 투자 철학을 배웠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어요. ‘시장의 흐름을 예측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게다가 수급을 예측하며 다른 투자자들의 심리까지 읽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한 일인가’라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느냐. ‘모든 주식 뒤엔 회사라는 실체가 있다’는 겁니다. 주식은 그냥 종잇조각이 아니라는 간단한 논리죠. 다시 말해 ‘증시가 없어도 그 회사 주식을 사겠느냐고 물었을 때 사겠다는 대답이 나올 경우엔 그 회사 주식을 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은 “버핏의 철학을 배운 뒤 기업의 순자산가치를 우선 순위에 두게 됐다”고 했다. “주식을 사는 것은 그 회사를 사는 것이란 확고한 가치관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으로 시장을 바라보니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개인이나 시장의 심리에 휘둘리지 않게 되더군요. 그렇게 하니까 투자 기법과 투자 마인드가 안정을 찾게 됐고 이는 자연스럽게 장기투자로 이어졌습니다.”

이 회장은 이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2001년 ‘㈜케이아이씨’란 플랜트 전문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는 제철이나 석유화학 플랜트를 전문으로 생산하는 상장기업이다. 이 회사 대표이사를 맡았던 그는 회사 규모를 10배로 키워 2007년 8월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리고 두 달 뒤인 그해 10월 ‘이스타항공’을 설립해 항공산업에 뛰어들었다.


10년 뒤 동양최대 항공사를 꿈꾼다

“왜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정 분야가 성장할 것이란 판단이 들면, 저는 덤벼듭니다. 익숙한 분야냐 아니냐 하는 것보다 전체적인 트렌드가 어느 분야로 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정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리더는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리더 자리를 내놔야 합니다.” 이 회장이 말을 이었다. “독과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기존의 대형 항공사들은 이미 포화상태입니다. 서비스·관광수요가 늘면 늘수록 트렌드는 저비용항공사가 될 것입니다. 외국의 경우를 봐도 그렇습니다. 미국, 유럽 모두 저비용항공사가 주요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전체 동양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엔 당시 제주항공(2006년 취항)과 한성항공(2008년 운항중단) 외엔 저비용항공이 없었어요. 그래서 투자를 결심했습니다.”

이 회장은 프로펠러기가 주를 이뤘던 저비용항공 시장에 과감하게 보잉737기를 도입했다. 자동항법장치를 갖춘 신기종이었다. “항공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사실 프로펠러기가 반드시 덜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는데, 바람이 불면 롤링(rolling)이 심해서 사람들이 의외로 불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잉737을 도입했습니다. 승무원 유니폼은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주문제작했습니다.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보다 싼값에 항공티켓을 판매하려 한 것입니다.”

이스타항공 김포~제주 간 가장 싼 요금은 편도 1만9900원. 요금체계는 8단계로 다양하지만 가장 비싼 것도 6만9900원에 불과하다. 이 회장은 여기에 아이디어 하나를 추가했다. ‘추억’을 선물하자는 것이었다.

“우리 회사의 각 항공기마다 스카이, 우주선, 어린왕자, 크루즈, 타임머신 등의 별명을 붙이고 그에 맞는 인테리어를 갖췄습니다. 예를 들어 스카이호의 천장엔 하늘과 구름이 그려져 있고 어린왕자호엔 칼을 찬 어린왕자가 승객을 향해 웃고 있습니다. 우주선호를 타시면 스페이스 셔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죠. 그리고 승무원이 승객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드립니다. 승객들은 이스타항공을 타실 때마다 ‘새롭다,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비행 자체가 추억이 되는 거죠.”

독특한 서비스와 파격적인 가격의 결과는 수치로 나타났다. 2009년 1월 7일 김포~제주 노선에 취항한 지 정확히 1년 만인 지난 1월 7일 탑승객 100만명을 돌파한 것이다. “항공 산업은 초기투자가 많이 듭니다. 항공기를 마련하고, 사람을 뽑고, 승무원을 훈련시키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통 이 기간을 3년으로 잡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2년차인 올해부터 흑자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0년 뒤인 2020년엔 동양 최대의 항공사로 이스타항공을 키울 것입니다.”

가난이 싫다며 울던 소년이 사회생활 20년 만에 “2020년 20대 그룹에 진입하겠다”며 포효하고 있었다.

Posted by Takumi

2010/01/17 17:51 2010/01/17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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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이미지의 탤런트 선우재덕 스게티 사장은 20년차 사업가다. 그의 사업경력은 크게 두 시기로 나뉜다. 제1기는 장사를 했던 1990~2002년까지다. 1990년 서울 성신여대 앞에 떡볶이 전문점을 열었는데 매장을 카페처럼 멋지게 꾸민 아이디어가 통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어느 날 친누나가 제안해 떡볶이 전문점을 정리하고 1998년에 광릉수목원 근처에서 카페를 시작했다. 이 사업도 잘 됐지만 선우 사장이 바빠지면서 몇 년 후 누나에게 넘겼다. 제2기는 그가 장사 차원을 넘어 기업을 경영한 시기다. 2003년 8월부터 현재까지다. 지금의 ‘CEO’ 선우 사장을 만든 경험의 8할은 바로 이 시기의 몫이다.

2003년 8월 그는 후배와 함께 중저가 스파게티 프랜차이즈 ‘스게티’를 설립했다. 처음에는 보통 연예인들처럼 초상권 제공, 마케팅 협력 정도만 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2004년에 선우 사장은 후배의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

“후배와 저의 회사 경영 방침이 잘 안 맞았어요. 저는 가맹점과 본사가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후배는 본사 위주로 영업을 하려고 해서 충돌이 잦았습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대개 연예인 쪽에서 손을 떼기 마련이다. 하지만 선우 사장은 거꾸로였다. 후배에게 “내가 회사를 맡겠다”고 제의, 아예 본격적으로 사업에 나섰다. 과거에 떡볶이 전문점과 카페 사업 성공 경험이 있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인수를 하고 보니, 황당하게도 회사의 재무상태가 엉망이었다. 그가 모르던 빚도 상당했다. “인수할 당시에 그런 것도 확인을 안했으니 정말 준비 없이 시작한 거죠.”

하지만 초반에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해 매장 수가 빠르게 불어났다. 매장 수가 가장 많았던 2006년에는 최대 35개의 매장이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사업이 꺾이기 시작했다.

“경기가 나빠지며 사업 환경이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스게티가 공략했던 시장이 생각과 달리 잘 열리지 않았습니다.”

스게티는 5000원대 스파게티로 대중화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경제력 있는 소비자들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스파게티를 먹고, 일반인들은 김밥, 라면 같이 아예 저렴한 음식을 선호하더라고요.” 5000원대 스파게티는 타깃 지점이 애매했던 것이다.

스게티에도 물론 장점이 있었다. 본사에서 반조리한 음식을 공급하기 때문에 조리사를 고용하지 않아도 음식을 만들 수 있어서였다. 가맹점들로서는 상당한 인건비 절약 요소인 것. 하지만 기본적인 고정비 리스크는 어쩔 수 없었다. 스게티의 식자재를 전부 이탈리아에서 수입했고, 일반 건물에 입점한 가맹점의 경우 매장 임대료와 인건비 등은 낮추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불경기에다 시장이 잘 형성되지 않자 견디지 못한 가맹점들이 하나둘 문을 닫았다. 현재 스게티 매장은 전국에 22개가 남아 있다.

“일반 매장은 많이 없어졌는데,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푸드코트에 들어간 매장들은 거의 살아남았어요. 푸드코트는 대부분 일정 수 이상의 유동인구를 확보하고 있고, 인테리어비 등도 거의 들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환경이더군요.”

관련 사업을 연구하다 홈쇼핑 시장을 개척, 포장 제품 공급도 하고 있다. 면과 소스를 30초만 데우면 바로 먹을 수 있는 제품으로, 회사 전체 매출의 10~15% 정도를 차지해 비중도 작지 않다. 선우 사장은 이제 한계가 있는 중저가 스파게티 사업의 확장 대신, 다른 식당 체인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2007년 12월 분당에 한우전문 식당 ‘선우랑한우랑’을 직영으로 열고, 이 시장을 경험 중이다. 처음에는 한우구이 전문점 프랜차이즈를 생각했는데, 2년쯤 운영한 지금은 방향을 약간 바꾸려고 한다.

“한우구이 식당은 리스크가 꽤 큰 사업 같아요. 믿을 만한 공급처 찾기도 어렵고, 투자비도 많이 들거든요. 한우 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서 원가를 맞추기도 쉬운 게 아니고요.”

대신, 그는 설렁탕·갈비탕·국밥·된장찌개 등 점심시간에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한우 관련 메뉴 위주의 체인은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생존한 스게티 매장의 경험을 살려 푸드코트 위주로 출점할 생각이다.

스게티 본사 실적은 가맹점이 최대 수준이던 2006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 2008년 매출은 17억원, 영업적자와 순적자가 각각 3억원이었다. 2007년과 매출은 비슷했지만 영업적자 규모가 9000만원에서 3배 이상 확대됐다. 하지만 선우 사장은 2009년 결산을 앞둔 지금은 “실적이 바닥을 찬 것 같다”며 희망찬 미소를 지었다.

수산물 유통으로 돌파구 마련

선우 사장의 명함에는 ‘대표 선우재덕’이라는 글씨와 함께 회사명이 두 개 적혀 있다. 하나는 스게티, 다른 하나는 새벽통상이다. 새벽통상은 새우살, 꽃게 등 냉동 수산물을 수입하는 회사다. 새벽통상이 수입한 냉동 수산물을 스게티가 웨딩홀, 호텔 등 국내 시장에 공급하고 있다. 2008년 초부터 매출원 다변화 차원에서 시도했다. 스게티 실적의 반등을 이 냉동 수산물 유통 사업이 이끌고 있다고 한다.

“수산물 유통 사업이 다행히 잘 되고 있어요. 프리마호텔 등 큰 계약처를 여러 곳 잡았고, 2010년에는 거래처를 더 늘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익 규모도 괜찮아서 2009년 매출은 더 커지고, 적자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합니다.”

선우 사장은 그 외에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일하고 있다. 2009년 들어 일본에 경북 상주 막걸리를 공급하는 사업권을 땄고, 또 분당 수내동에 ‘선우와사케와’라는 직영 사케(일본 술)바도 새로 열었다. 사케바 역시 경험을 쌓은 후 나중에 체인화를 시도할 생각이다.

6년차 식당 프랜차이즈 CEO가 된 선우 사장은 이제 뭣 모르고 스게티를 인수했던 그 시절과 사뭇 달라졌다. 2004년에 스게티를 완전히 인수한 후 몸으로 부딪혀 익힌 경영의 교훈이다. 지금까지 월급도 없이 하루에 4~5시간 자면서 묵묵히 일해 왔다.
“전에는 투자비만 맞춘 사람들이면 그냥 가맹점을 내줬는데, 그런 분들 중에 경영마인드나 성실성 부족으로 못 버티는 경우가 많더군요. 앞으로는 가맹점 계약을 할 때 열심히 장사를 하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 분들 위주로 가맹점주를 엄격하게 선정할 생각입니다.”

Posted by Takumi

2010/01/17 10:48 2010/01/17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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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모리 시게노부 일본전산 사장

이 사람은 '魂'을 가졌다

블룸버그

<일본전산 이야기>주인공 나가모리 일본전산 사장 인터뷰

난관에 부딪혀 앞이 캄캄할 때, 남들에 비해 내가 가진 조건이 다 불리해 보일 때…. 이럴 때 이 사람의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 보면 어떨까?

이 사람과 1시간 30분의 인터뷰를 마쳤을 때 기자는 지치기는커녕 마치 힘이 나는 약을 먹은 느낌이었다. 그는 지상 최고의 모티베이터였다.


일본전산(日本電産)의 나가모리 시게노부(永守重信·65·사진)사장. 이 사람의 이야기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다. 한국에서도 그랬다. 그의 성공 스토리를 엮은 책 〈일본전산 이야기〉는 올 초에 나와 지금까지 30만부가 팔렸고, 삼성경제연구소는 'CEO들이 여름휴가 때 읽을 책 20권' 중 하나로 꼽았다.

그는 일본에서 가장 열정적인 경영자로 꼽힌다. 1973년 가정집 한 귀퉁이 창고에서 전기 모터 회사를 창업해 지금은 140여개 계열사에 13만명의 종업원, 매출 약 8조원의 그룹을 일궈냈다. 일본판 벤처 신화이다. 게다가 국내외 27개 회사를 인수합병(M&A)한 뒤 모두 경영을 정상화시켜 '기업 재생의 신(神)'으로 불린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본 재계 랭킹 100위권 밖의 중견 기업. 그런데도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그의 이야기에 통쾌한 역전이 있고, 가슴 뛰게 하는 꿈이 있기 때문이다.

나가모리 사장은 스스로를 '헨진(變人·이상한 사람)'이라고 할 정도로 괴짜 경영인이다. 그는 정형(定型)과 겸양이 미덕인 일본 사회에서 기행(奇行)과 파격(破格)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그의 파격은 다분히 의도적인 것이었다. 벤처기업이 도쿄 식(式)을 그대로 따라 해서는 도쿄의 대기업에 승산이 전혀 없었기에 그는 의도적으로 도쿄식을 거슬렀다. "다른 사람을 흉내 내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라고 하면서. 그래서 창안한 것 중 하나가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순서대로 뽑는, 기발한 신입사원 공채 시험이었다.

그와의 만남은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일본전산 교토 본사 20층에 있는 그를 만나러 엘리베이터를 탔더니 4면이 모두 녹색이었다. 다무라 홍보부장은 나가모리 사장이 녹색에 대한 고다와리(특정한 것에 대한 마니아적 집착을 나타내는 일본어)가 있다고 귀띔했다.

과연 그는 녹색 넥타이에 녹색 행커치프 차림으로 나타났다. "왜 녹색인가" 물으니 그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보여준다. 역시 녹색. 소매를 걷으니 드레스셔츠의 커프스버튼까지 녹색이다.

"구성술(九星術-점성술의 일종)에 따르면 저는 흙(土)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흙은 식물, 즉 녹색이 없으면 썩어 버리죠. 그래서 녹색입니다. 녹색 넥타이가 1000개가 넘어요. 그리고 식물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서는 태양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나 책상을 남쪽이나 동쪽에 둡니다. 회사도 반드시 남향 아니면 동향입니다. 곳곳에 사옥이 있고, 공장이 있는데 다 그래요. 그런데 도산한 기업을 인수한 뒤 가보면 공교롭게도 대개 북향 아니면 서향이에요."

늘 밝고, 기운찬 것을 좋아하는 것도 그의 고다와리다. 사옥 1층엔 6개의 그림이 벽에 걸려 있었는데, 모두 해바라기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엔 일곱 마리의 말이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달려가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많은 사람이 나가모리 사장에게 고속성장의 비결을 묻는다. 그런데 그 대답이 우스울 만큼 간단하다. "남들보다 두 배 일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전산의 행동 지침은 이렇다. '즉시 한다. 반드시 한다. 될 때까지 한다.'


창조경영을 논하고, 서번트 리더십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무모하다고 할 만큼 '전근대적'인 경영 철학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다른 길이 없었다고 했다. "36년 전 창업했을 때 우리 경쟁 상대는 세계와 일본을 대표하는 대기업이었습니다. 그들에 이기기 위해서는 흙탕물 마시며 두 배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일본전산의 핵심 가치인 '정열(情熱), 열의(熱意), 집념(執念)'을 나가모리 사장이 자필로 썼다.

일본전산의 핵심 가치는 '정열, 열의, 집념'이다. 나가모리 사장의 정열은 짧은 인터뷰 시간에도 생생하게 느껴졌다. 억양이 센 오사카변(사투리)을 쓰는 그는 목소리 크기도, 말하는 속도도, 대화에 몰입하는 정도도 다른 사람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사장님 책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왜 한국 CEO들이 사장님 이야기에 열광할까요?

"몇 달 전 한국에 갔더니 호텔 종업원들이 저마다 제 책을 들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더군요. 사장님이 읽고 감상문을 써내라고 했다면서요. 일본도 30년 전만 해도 저 같은 사람들이 있었어요. 마쓰시다 고노스케나 모리타 아키오 같은 분들이죠. 그런데 요즘 일본 사람들은 '남들 두 배 일하라' 이런 말 하면 '힘들다', '괴롭다', '이젠 인생을 좀 즐길 때 아니냐'고 해요. 하지만 한국에는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들이 아직 많은 것 같아요. '일본을 따라잡고, 일본을 앞지르려면 일본에서 성공한 것을 다 따라 배우자'고 말하는 사람이. 그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 나가모리 사장은 녹색을 좋아한다. 넥타이도, 지갑도, 행커치프도, 드레스셔츠의 커프스버튼도 모두 녹색이다. / 마이니치 제공 ■능력의 차이는 5배, 의식의 차이는 100배

일본전산을 이야기하는데 빠뜨릴 수 없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나가모리 사장이 창업 초기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했는데, 인재가 오지 않아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장인이 지나가는 말처럼 "군대 생활해보니 밥 빨리 먹고, 목욕 빨리하고, 용변 빨리 보는 사람이 일도 잘하더라"고 말했다.

나가모리 사장은 1978년 '밥 빨리 먹기 시험'을 실행에 옮긴다. 160명의 응시자 중 서류와 면접으로 절반 정도를 거른 뒤 남은 전원에게 도시락을 나눠줬다. 그리고 가장 빨리 먹은 사람 순서대로 서른세 명을 무조건 합격시켰다. 커트라인은 15분이었다. 떨어진 사람들은 "무슨 이런 시험이 있느냐"고 아우성쳤고, 지역 언론은 "한심한 회사"라고 보도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그 뒤에도 '큰소리로 말하기' 시험, '화장실 청소' 시험, '오래 달리기' 시험과 같은, 일본전산만의 시험을 고집했다.

"저도 원래는 도쿄대나 교토대 출신의 머리 좋은 사람을 뽑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엔 그런 인재가 좀처럼 오지 않습니다. 밥 빨리 먹기 시험은, 명문대 출신은 아니지만 잠재 능력이 큰 사람을 뽑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밥 빨리 먹기 시험이야말로 어느 입사시험보다도 효과 만점이었다"고 덧붙였다. "일본전산에서 세계적 발명이 나오고, 세계 챔피언이 됐는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을까요? 그게 바로 그때 밥 빨리 먹고 목소리 커서 뽑힌 사람들이었어요."

범재(凡才)를 천재(天才)로 만드는 데 나가모리 사장만의 리더십과 동기 부여법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은 물론이다. 능력의 개인 차는 아무리 커도 5배를 넘지 않지만, 의식의 차이는 100배의 격차를 낳는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출중한 능력을 가진 사람보다 평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뽑아 그들의 하려는 의욕을 높이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것, 이것이 그가 말하는 고속성장의 비결이다.

그가 무조건 두 배 일하라고 다그치기만 했다면 직원들이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겐 전혀 다른 면모도 있었다. 결코 스펙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실패한 직원에게 점수를 더 주며, 부하에게 호통을 친 뒤에 뒤끝은커녕 두 배의 배려를 기울인다. 다른 기업을 인수하면 단 한 명의 구조조정도 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두 배 일하게 만드는 그의 노하우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요즘도 밥 빨리 먹고, 목소리 큰 사람 뽑습니까?

"지금은 밥을 먹게 한다든지 그런 일 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을 금방 알 수 있어요. 수십 년 데이터가 쌓여 있기 때문에 어떤 질문을 해서 어떤 대답을 하면 합격, 어떤 대답을 하면 불합격, 이런 게 시스템으로 돼 있습니다. 노하우지요. 기본적으로는 요즘 사람들이 예전처럼 '경쟁에서 이기자'는 정신이나 정열, 열의, 집념 이런 게 부족하니 그런 사람을 어떻게 뽑는가 하는 노하우입니다. 수천 가지의 노하우가 있습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예전에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저는 늘 '한 사람의 100보(步)보다 100사람의 1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천재보다 100사람의 1보가 낫다는 것이죠. 100보라고 해도 100사람이 한다면 한 사람에 1보밖에 안 됩니다. 하지만 한 사람의 100보는 힘든 일이니까요."

―이건희 회장과는 반대군요?

"완전히 반대입니다. 한 사람의 천재가 1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건 과거의 이야기입니다. 일본에서도 수백 년 전엔 그렇게들 말했어요. 나라 전체의 수준이 크게 뒤떨어져 있을 때는 그것을 단기간에 끌어올리려면 천재가 필요합니다. 한국도 그런 생각에서 삼성이나 LG 같은 대기업이 나왔을 것이고요. 일본도 전전(戰前)에 그랬습니다. 재벌이 이끌고 갔죠.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습니다. 이제는 한국도 출중한 나라가 됐기 때문에 생각을 바꿔 나가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성장이 더딘 이유가 그런 데도 있습니다."

 ■일이 즐거우니 두 배 일한다

남보다 두 배 일한다는 그의 사고방식은 그의 모친에서 비롯됐다. 그가 월급쟁이를 그만두고 창업을 한다고 했을 때 모친은 그를 거듭 말렸다. 그래도 그가 뜻을 굽히지 않자 모친은 그에게 한 가지를 조건으로 허락했다. 바로 "늘 다른 사람의 두 배를 일하겠다는 약속을 하라"는 것이었다. 나가모리 사장은 농사꾼 집안의 6남매 중 막내였다. 남편을 일찍 사별한 모친은 아침엔 남보다 일찍 밭에 나가고, 밤엔 가장 늦게 귀가하는 '두 배 일하기'로 많은 전답을 사 모았다.

―한국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열심히 하는 사람 못 이기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 못 이긴다.' 사원들에게 두 배 일하라고 하지 않아도, 즐기며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면 저절로 두 배 일하지 않을까요?

"그런 생각을 실천한 것이 바로 일본전산입니다. 30~40년 전만 해도 일할 데가 없으니 힘들어도 열심히 일했죠. 하지만 요즘은 능력 있는 사람은 어디 가서도 일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왜 여기서 일 하나? 일을 즐기기 때문입니다. 저만 해도 그래요. 저는 돈이 많습니다. 그런데 왜 새벽 5시30분에 일어나서 밤까지 일하나요? 일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일본전산엔 회사를 키우는 즐거움, 새로운 회사를 만들고, 다른 기업을 인수해서 키우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미국의 구글 같은 회사는 일을 즐기라고 해서 회사를 마치 놀이동산처럼 만들었다고 합니다.

"미국 사람들은 일이 끝나면 집에 가서도 일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퇴근하면 술집으로 갑니다. 노동의 질이 다릅니다. 그런 사람들과 경쟁하려면 두 배 일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논다는 게 그래요. 매일 일하다 조금 쉬면 재미있지만, 매일 놀면 재미가 없어요.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푼다고 술 마시고, 파친코에 가고, 영화를 보고 합니다만, 그렇게 풀리는 스트레스라면 진짜 스트레스가 아닙니다. 작은 스트레스이죠. 진짜 스트레스는 일 스트레스이고, 그것은 일로 성공해야 비로소 풀립니다."

(나중에 다무라 홍보부장은 두 배 일하라는 것이 무조건 '오래' 일하라는 것과는 구별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즉 일본전산의 하드워킹이란 '지적 하드워킹'을 말한다는 것이다. 생각으로 일하는 것, 일을 쉬고 있을 때나 무의식중에도 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을 의미한다. )

■경제위기 이후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발본적 개혁 시동

―100년 만에 최대의 경제위기라고 합니다. 사장님에게도 그랬나요?

"창업 후 36년 동안 이런 일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작년 말 리먼 브러더스 쇼크 이후 순간적으로 매출이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어요. 우리 같은 제조업체는 보통 매출이 30% 줄면 적자를 보게 됩니다.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매월 100억엔씩 적자를 보는 것으로 나와요. 그래서 어떻게 적자를 면할까 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미국 대공황 때도 성공한 기업들이 있었는데 그런 기업의 성공 비결에 관한 책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매출이 반으로 줄어도 이익을 내는 구조로 바꿔야 하겠다. 그러면 매출이 70%로 회복되면 이익이 예년 수준으로 회복되고, 매출이 100% 회복되면 이익이 두 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작한 게 'WPR'입니다."

―WPR요?

"예. 'double profit ratio'의 약자입니다. (다무라 홍보부장은 'DPR'로 줄일 수도 있지만, 말하기 편하게 'WPR'로 했다고 설명했다.) 어떻게 하면 매출이 줄어도 이익을 낼 수 있을까, 이것을 전사적으로 검토했는데, 그랬더니 수만 건의 개선 항목이 나왔습니다. 그것을 묶어서 사내 매뉴얼도 만들었어요. 생산성을 배가하고, 운영을 재편하고, 신사업을 개척하는 내용입니다. 예를 들어 그동안 잔업 4시간을 해서 하던 일을 잔업 없이 정시에 끝내자, 쓸데없는 회의는 없을까 같은 것도 철저히 검증하자, 그리고 하청기업 선정도 그룹 차원에서 통일 기준을 만들어 계열사에 지시했습니다. 다행히 매출이 아직 100%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는데도, 내년 3월 결산기의 이익률은 사상 최고치를 달성할 것 같습니다."

―잔업 4시간으로 하던 일을 정시에 끝내다니, 마치 마른걸레를 다시 짜자는 것처럼 들립니다. 일본전산 같은 회사에서 직원에게 더 짜낼 게 남아 있습니까?

"마른걸레 짜는 것, 그런 일 저희는 안 해요. (웃음) 그런 도요타식 구식 합리화가 아닙니다. 그렇게 사원을 쥐어짜는 식으로는 위기 극복이 불가능합니다. 비유하자면 걸레로 청소하던 것을 전동청소기로 바꾸는, 그런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라고 할까요? 걸레로 10시간 걸리던 것을 전동청소기로 1~2시간에 끝내는 거죠. '정시에 퇴근해라. 그리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일해라. 잔업 수당이 없어지니 곤란하겠지만, WPR로 수익을 내서 돌려주겠다.' 이런 것이 WPR의 요체입니다. 마른걸레 짜는 회사들은 직원들 목을 잘랐지만, 우리는 한 명도 감원하지 않았어요. 그런 식으론 결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없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입니까?

"누구나 궁금해하고 있지만, 노하우니까 공개할 수는 없어요."

 
▲ 나가모리 사장은 말할 때 제스처를 많이 썼다. 그는 대학 시절 대학신문 편집장과 변론부 활동을 한 것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오른쪽은 이지훈 위클리비즈 에디터. / 일본전산 제공 ■부실기업 살리는 비결은 사원들의 병든 의식 고치는 것

나가모리 사장은 끊임없는 M&A를 통해 회사를 확장해 왔다. 그는 27개의 기업을 인수한 뒤 모두 흑자로 돌려놓았다. 그것도 한 명의 구조조정도 없이.

―부실기업을 살리는 비결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원의 의식 개혁입니다. 부실기업의 특징은 사원들의 의식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회사가 망하는 것은 아닐까', '월급 못 받는 것은 아닐까' 이런 불안감 때문에 일하려는 의욕이 꺾이게 됩니다. 일본전산보다 큰 기업, 역사가 긴 기업, 기술이 뛰어난 기업도 경영이 어려워지는 이유는 사원들의 의욕이 꺾였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되돌리는 것이 바로 경영자의 일입니다. 사원들의 병든 의식을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바꾸는 것이죠."

나가모리 사장의 부실기업 경영 정상화 방식은 철저히 현장 중심적이다. 지난 2003년 나가노현의 산쿄정기(三協精機)를 인수한 뒤 그는 매주 2박3일씩 출장을 갔다. 400㎞ 거리다. 그리고 작업복에 작업모를 쓰고 공장을 돌아다녔다. 2004년 9월까지 12개월 동안 일반사원-주임급 사원과 52회, 과장 이상 관리직과는 25회의 간담회를 가졌다. 가장 먼저 당부한 일이 자발적으로 10분 일찍 출근해 회사를 깨끗이 청소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사원의 의식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출근 시간과 직장의 정리정돈, 그리고 전화 응대라고 말한다. 그는 의식 개혁을 위해 항상 '6S'를 강조한다. 정리, 정돈, 청결, 청소, 단정, 예의의 이니셜을 딴 것이다.

―그 여섯 가지만 잘하면 경영이 정상화되나요?

"전화는 엉망으로 받고, 사원은 지각하고, 공장은 더럽고, 이런 회사 중에 실적 좋은 회사가 있으면 알려 주세요. 사실 6S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경영 정상화를 하러 가보면 그것을 못하고 있어요. 그것을 할 수 있게 되면 점점 수익이 나기 시작하죠."

―오늘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십시오.

"오전 5시50분에 일어나서 아침 먹고 6시50분에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30분 동안 경비에 관한 전표를 봅니다. 그리고 전화를 하고 회의를 하고. 점심은 10분 만에 먹습니다."

―10분요? 저녁도 10분입니까?

"저녁은 20분입니다. (웃음) 아침은 5분이고요. 그러니 5분-10분-20분입니다. 양은 많이 먹지만, 먹는 속도가 빠릅니다. 저는 365일, 휴가도 없이 일합니다. 쉬는 것은 설날 오전뿐입니다. 술도 끊었고, 담배도 피우지 않습니다."

―인생에 유일한 낙이 일입니까?

"일하는 것은 힘듭니다. 일 자체가 즐겁다기보다 일한 결과가 나오니 즐거운 것입니다. 처음에 이 방과 비슷한 크기의 공장에서 시작했는데, 36년간 계속 성장하고, 사회에 공헌하고, 세계에 진출하고 이런 것이 다 즐거운 것 아닌가요?"

■직원들에게 1주일에 1000통의 이메일을 보낸다

―사장이 아니었다면 어떤 일을 했을 것 같습니까?

"제가 하고 싶었던 게 세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야쿠자의 두목, 둘째 노동조합 위원장, 그리고 셋째가 사장입니다. 공통점은 많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 강한 리더십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야쿠자 두목은 가장 어려운 일일지도 모릅니다. 사회는 물론 가족들도 기피하는 사람들을 교육시키고, 마음을 움직여야 하니까요."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면 교세라그룹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회장과 생각이 비슷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두 분 다 이른바 '교토식 경영'을 상징하는 인물이신데, 이나모리 명예회장은 사장님께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그리고 그와는 어떤 사이입니까?

"이나모리 회장이 저보다 12살 위인데, 공통점이 3가지 있습니다. 첫째, 열심히 일하고, 둘째, 미래의 꿈을 보는 소년이었고, 셋째, 삼류대학 출신이라는 것입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장학금을 많이 주는 직업훈련대학교 전기과를 졸업했다.) 20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제가 많이 배웠습니다. 그런데 저녁에 그 양반과 식사를 같이하면, 저와 닮은 점이 있어요. 식사가 끝나면 둘 다 집에 안 가고 회사로 돌아갑니다. 노력가라는 것이죠. 교토의 기업들을 보면 CEO들이 모두 유니크한 사람들이에요. 헨진(變人)이죠. 그런데 경영은 흉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교토)는 창업자가 많은 곳입니다. 도쿄나 오사카는 샐러리맨투성이지만."

―대학 시절 대학신문 편집장을 지냈는데, 신문 만들어본 경험이 경영에 도움이 됐나요?

"경영자가 사람을 움직이려면 마음을 전하는 말과 문장을 써야 합니다. 일반적인 내용이 아니라 자신이 아니라면 누구도 쓸 수 없는 그런 글을 써야 하는데, 편집장 경험이 많이 도움이 됐습니다. 대학 시절에 또 변론부 활동도 했는데, 사람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나가모리 사장은 사원들에게 이메일을 많이 보낸다. 1주일에 보통 1000통을 보낸다. 출장 가기 위해 신칸센(新幹線)을 탈 때도 계속 이메일을 쓴다. '자네, 그건 틀린 것 같아', '잘했어',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이런 내용이다.

"인간에게 모티베이션이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은 3일, 경영자라고 해도 2~3개월 정도죠. 따라서 다른 사람이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해 주지 않으면 90%의 사람은 열심히 일하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원들의 일하려는 의욕을 높이기 위해 이메일을 보냅니다."

인터뷰를 시작한 뒤 어느덧 약속했던 1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오늘의 인터뷰를 즐기는 것 같았다.

■한국, 삼성·LG·현대 셋만으로는 꿈이 없다

―한국 기업들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일본 기업과는 어떻게 다릅니까?

"한국 기업의 발전은 눈부십니다. 하지만, 한국엔 삼성과 LG, 현대 이렇게 셋밖에 없어요. 미국, 일본엔 수백 개인데, 한국엔 셋뿐이에요. 이래서는 젊은이들에게 꿈이 없어요. 이게 일본과의 차이입니다. 한국이 진짜 강해지려면 중소기업, 벤처기업도 대기업으로 클 수 있는 나라, 그래서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젊은이에게도 찬스를 주는 나라가 돼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의미의 일본 추월도 가능합니다.

일본도 전후(戰後)에 소니나 혼다, 교세라 같은 기업들이 생겨났죠. 이런 게 안 생기면 진정한 의미에서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일할 의욕이 생길까요? 한국이 잘되려면 온실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아니라 흙탕물 먹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창업자가 많아야 합니다. 선택지가 많아야 하는데, 한국엔 선택지가 극단적으로 좁아요. 공부 열심히 해서 가는 데가 삼성, LG, 현대뿐이라면 세상이 재미없지 않아요? 대기업에 입사하는 사람은 만족해도 대기업에 못 들어가는 젊은이는 희망이 없어요. 바로 이런 점도 한국에서 제 책이 잘 팔리는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저 같은 삼류 대학 출신, 밑바닥에서부터 출발하는 사람에게도 꿈을 주니까요."

나가모리 사장은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기 강사이기도 하다. 그가 쓴 〈사람을 움직이는 사람이 되라〉는 책에 '정열, 열의, 집념'을 자필로 써달라고 부탁했다. 신문에 실을지도 모른다고 하자, "그렇다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안되지" 하면서 미리 써서 인쇄해 둔 종이를 가져오게 한 뒤 기자에게 건넸다.

자리에서 일어선 그는 "다시 만납시다"하며 기자의 손을 잡았다. 묵직하고 따뜻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9/10/16/2009101601032.html

Posted by Takumi

2009/11/11 14:34 2009/11/1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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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前회장의 말처럼 전 세계는 하나의 시장
불황땐 PC·휴대폰·자동차도 우리의 경쟁상대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사장/사진=유니클로 제공
'시골 양복점을 물려받아 일본 최대 의류  회사로 키운 입지전적 기업가,최악의 불황에도 사상 최대 매출을 경신하는 카리스마 경영자,재산을 61억달러(약 8조2400억원)나 모은 일본 최고 갑부.'

캐주얼 의류브랜드 '유니클로'로 유명한 패스트리테일링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 겸 사장(60)에 대한 평가다. 지난 24일 패스트리테일링 도쿄 본부에서 만난 야나이 회장의 첫 인상은 선입견과 달리 '소년' 같았다.

160㎝가 약간 넘는 작은 키에 스포츠형 짧은 머리,위아래 치아를 다 드러내며 웃는 모습은 천진스럽기까지 했다. 하지만 인터뷰를 시작하자 그는 시종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유니클로의 성공 요인과 향후 목표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한국 언론과는 처음 가진 이날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야나이 회장은 "어느 책에선가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이 '세계 전체가 시장'이라고 한 말을 읽고,글로벌화를 추진한 게 지금 같은 성공을 가져왔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지금 같은 불황에도 고속성장을 지속하는 비결은 무엇인가.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말처럼 전 세계는 하나의 시장이다. 의류는 전통적으로 내수 산업이지만,글로벌 시장 전체가 내 시장이라고 생각했다. 세계 모든 고객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옷을 만들려고 노력한 게 성공비결이라면 비결이다. "

▼회사의 경영이념 1조가 '고객 요망에 부응해 고객을 창조한다'라고 들었다. 말로는 쉽지만 실천은 어려운 것 아닌가.

"그걸 어렵다고 해선 안 된다. 고객이 제품을 사줘야 기업의 존재 의미가 있다. 고객 수요가 무엇인지 찾아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 않으면 고객이 제품을 사지 않는다. 기존 시장만 지키려고 해선 망한다. "

▼유니클로의 '브라톱'(브래지어 패드가 달린 여성 웃옷)이나 '히트텍'(보온성 신소재로 만든 내복)은 인기가 높다. 히트상품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그런 히트상품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절실하게 노력하지 않기 때문에 못 만드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제품을 만들기 위해 몇 년간 머리를 싸매고 치열하게 고민했다. "

▼유니클로 제품은 싸기 때문에 성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가격 요소를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아무리 싸더라도 기능이 좋지 않고,패션이 떨어지면 옷은 팔리지 않는다. 유니클로보다 더 싸게 판 기업도 많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유니클로 제품이 싸기만 해서 팔렸다고 보면 오산이다. "

▼결국 유니클로 옷은 기능,패션,저렴한 가격 등 세 가지 요소를 다 갖췄다는 얘긴데,그중에서도 가장 중시하는 건 무엇인가.

"세 가지 모두 소중하다. 고객은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제품을 사고 싶어 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시원치 않으면 안 팔린다. "

▼불황기 기업 경영자들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나.

"만년 불황이라고 생각하는 게 좋다. 호황을 기다리지 말고 세계 시장을 내다봐야 한다. 해외에서 팔리는 물건을 만들면 국내에선 더 잘 팔린다. "

▼불황 땐 소비자의 니즈도 변하지 않는가.

"소비자들은 더 까다로워진다. 조금이라도 더 싸고,더 좋은 물건을 찾는다. 또 소비예산이 줄기 때문에 옷만이 아니라 PC 휴대폰 자동차 등도 경쟁상대가 된다. 수많은 상품 중에 선택받으려면 정말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

▼아버지로부터 양복점을 물려받아 사업을 시작한 걸로 아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큰 회사로 키울 자신이 있었나.

"처음엔 점포 30개에 연매출 20억엔 정도로 키우면 할 만큼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회사를 성장시키고 싶다는 욕구는 컸다. 그걸 위해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실행했을 뿐이다. "

▼'2020년 매출 5조엔,영업이익 1조엔'을 중장기 목표로 발표했다. 이를 달성하려면 매년 20% 이상씩 성장해야 한다. 너무 높은 목표 아닌가.

"모두들 그렇게 얘기한다. 하지만 쉽게 도달할 수 있는 목표는 의미가 없다. 시골 양복점 하나로 시작할 때 이 정도 회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지금도 상상할 수 없는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 그만큼 성장할 수 없다.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세우는 게 성장의 원동력이다. "

▼목표를 달성할 전략은.

"세 가지다. 첫째 글로벌화다. 우린 세계 시장으로 더 뻗어나갈 것이다. 둘째 다양한 브랜드의 그룹화다. 현재는 캐주얼 브랜드가 주력이지만,앞으론 다른 분야로도 진출할 계획이다. 셋째 벤처기업화다. 대기업이지만 벤처처럼 혁신적인 경영을 한다는 게 전략이다. "

▼해외 기업 인수 · 합병(M&A)에도 관심이 많다고 들었다.

"유럽이나 미국에 있는 우리 회사 규모의 캐주얼 브랜드를 인수하고 싶다. 해외 기업 인수를 위해 3000억~4000억엔(약 4조~5조4000억원) 정도를 준비하고 있다. "

▼업계에선 카리스마가 강한 경영자로 알려져 있다.

"난 카리스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장이 카리스마가 강하면 직원들이 주눅든다. 그런 문화로는 기업이 성공할 수 없다. 나는 하향식(Top-down) 경영도 하지만,똑같은 비중으로 상향식(Bottom-up) 의사 결정도 존중한다. 물론 최종 결단을 하는 건 사장이다. 따라서 사장은 가능한 한 빨리,정확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기업이 커질수록 리더의 하향식 경영이 중요하다. 반대로 상향식 경영도 필수다. 사장의 결정이 틀렸다면 현장 직원이 직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원이 최고의 인재다. "

▼사내대학을 만들어 200명의 간부 후보를 키울 계획이라고 들었다. 이유는.

"내가 늙었기 때문이다. (웃음) 난 사장을 65세가 되기 전에 그만두고 싶다. 경영자는 체력이 중요한데,65세가 넘으면 무리다. 그에 대비해 유니클로를 더 큰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 인재 200명 정도를 키우려는 것이다. "

▼65세 이전에 은퇴하면 무얼 할 생각인가.

"회장직만 맡아 오전 10시께 출근했다가 오후 3시께 퇴근하고,매주 수요일엔 골프를 치는 게 내 꿈이다. (웃음)"

▼사장 후계자는 고려 중인가.

"사장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이다. 후보는 누구나 될 수 있다. "

▼자녀들에게 물려줄 생각은 없나.

"두 아들이 있지만 물려줄 생각이 없다. 아이들에겐 회사 지분을 각각 10% 정도 줬다. 자식들은 대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역할만 시키고 싶다. 사장은 혈연관계가 아닌 사람으로 뽑을 것이다. "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오너가 아닌 사원도 노력하면 나중에 사장까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좋은 인재가 모이지 않겠나. "

▼오너경영자는 오너십이란 장점도 있는데.

"그런 점도 있다. 그러나 회사 사장은 정말 베스트여야 한다. 오너십 여부를 떠나 경영은 가장 뛰어난 사람에게 맡겨야 한다. "

▼유니클로의 한국 사업은 어떤가.

"꽤 만족한다. 파트너인 롯데백화점도 좋고,좋은 인재도 많다. 한국 시장은 성장 가능성도 크다. 앞으로 점포를 지금보다 몇 배 더 늘릴 것이다. "

Posted by Takumi

2009/04/28 19:48 2009/04/28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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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햅틱 이론' 주창 日 대표 디자이너 하라 켄야 교수
해외 유학파 많은 한국 디자인 스타일링은 일본보다 앞서
이제는 한국다움이 무엇인지 정체성을 고민해야할 시기

그에게 삼성전자의 휴대전화인 '햅틱폰'을 아는지 물어본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이른바 '햅틱 이론'을 집대성한 인물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하라 켄야(原硏哉·51) 일본 무사시노 미술대학 교수.

햅틱(haptic)은 촉각(觸覺)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국내 소비자들에겐 휴대전화 이름을 통해 널리 알려졌지만, 디자인 분야에선 이미 몇 해 전부터 각광받기 시작한 개념이다. 시각과 청각뿐만 아니라 촉각까지 디자인의 영역으로 끌어넣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말한다. 마케팅의 초점이 '소비자의 눈을 사로잡는 시대'에서 '소비자의 오감(五感)을 파고드는 시대'로 이동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핵심 개념이다.

그런 햅틱 이론의 주창자인 그의 대답은 뜻밖에도 "(햅틱폰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침 기자가 갖고 있던 햅틱폰을 건넸다. 그런데도 첫 반응은 심드렁했다. "(애플의) 아이폰 비슷하네…."

그러던 그가 진동 터치를 요리조리 누르고, 햅틱의 야심작인 '주사위 게임'에 도달했을 때 작은 탄성을 내뱉었다. "와, 이거 갖고 싶은데요. 인터랙션(interaction)이 꽤 훌륭해요. 소니가 분발해야겠는데…." (그는 소니가 분발해야겠다는 말을 뒤에도 여러 번 반복했다.)

좋은 디자인이란 어떤 것인지 묻자 하라 켄야는 자신의 배를 두드렸다.“ 배가 나온다고 벨트에 구멍을 뚫으면 몸은 더 뚱뚱해져요. 벨트도 구멍이 숭숭 뚫려 보기 싫어지고요. 긴장을 주는 디자인이 좋죠. 내 배는 이미 나왔지만…(웃음).”

하라 교수는 "삼성전자의 햅틱폰은 사람의 감각에 대응하는 새로운 디자인 분야를 제안하고 있는 나에겐 바람직하고 재미있는 시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다만 터치 패널이 진동하는 것은 기술적인 측면의 햅틱으로 커다란 단서의 시작일 뿐이며, 감성적으로 햅틱의 개념을 확장시켜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 2004년 '햅틱전(展)'이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기획했다. 재스퍼 모리슨(Jasper Morrison)과 구마 겐코, 후카사와 나오토(深澤直人) 등 세계 톱 수준의 제품 디자이너들을 그러모아 오감(五感)에 소구하는 새로운 디자인 개념을 제안했다.

디자인 회사인 일본디자인센터㈜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그의 디자인 철학은 '담백(淡白)'이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같은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디자인 철학이 구현된 대표작 중 하나가 신개념 패션 브랜드인 무인양품(無印良品·일본 발음은 '무지루시료힌'·MUJI)이다. 그는 실용 스타일의 정점을 보여주는 '무지 스타일'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저서 '디자인의 디자인', '리디자인', '햅틱'은 디자인 전공자들의 필독서 중 하나다.

'발상 전환의 아이콘' 같은 그가 지난달 말 열린 '서울리빙디자인페어' 참석차 한국을 방문했다. 박람회가 열린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하라 교수를 만나 단독 인터뷰했다.

첫인상은 무뚝뚝했다. 통역사가 같은 대학 출신인 것을 밝히자 바로 반말로 자신의 애플 컴퓨터를 연결해 달라고 했고, 고저가 없는 모노톤의 음성으로 질문에 답했다. 그랬던 그가 굳은 표정을 허물기 시작한 것은 햅틱폰과 아이리버의 USB 등 한국의 IT 제품이 화제로 올랐을 때였다. 두 눈 가득 호기심을 채우고 자신의 대표 이론 '햅틱 론(論)'과 '리디자인 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바나나야, 우유야?”바나나 자체를 눌러 만든 것 같은 바나나 우유 패키지. 맛을 촉감으로 표현해 햅틱을 구현했다. 후카사와 나오토가 햅틱전에서 선보인 작품.
■소비자의 오감(五感)을 파고들어라

―촉각을 중요한 디자인 요소로 포함해 디자인의 지평을 넓혔다. 당신이 주창한 '햅틱 이론'을 쉽게 설명해달라.

"색깔과 형태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어떻게 느끼게 할 것인가'도 디자인의 영역이다. 인간은 아주 섬세한 '감각의 다발'이다. 이 감각을 활용해 세상을 새롭게 느끼고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가자는 것이 햅틱 이론이다."

"개념이 좀 추상적이다"라고 하자, 하라 교수는 햅틱전에 참여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인 재스퍼 모리슨이 한 말을 전해주었다. "모리슨에게 전시 기획 의도를 설명하자 그는 '오감(五感)으로 느끼고 저절로 침이 나오게 만드는 디자인이 맞느냐'라고 반문하더라. 고기를 맛있게 굽고 있는 모습을 보면 저절로 입안에 침이 고이는 것처럼 햅틱은 보이지 않는 감각을 자극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에서도 열린 햅틱전은 규모는 작지만 새로운 개념을 제시한 획기적인 전시로 평가받았다. 바나나 껍질의 모양과 질감을 살린 바나나 우유팩〈사진〉, 두부의 촉감을 살린 두부 모양 두유팩, 이끼가 깔려 있어 보기만 해도 폭신해 보이는 게다(げた·일본 나막신) 등 오감을 일깨우는 디자인들이 선보였다.

빨래가 아니다. 가만히 보면‘여자 화장실’이란 표기가 보인다. 하라 켄야가 빨래처럼 빨 수 있는 천으로 만든 우메다 병원의 안내 사인.‘ 최고의 청결’이라는 메시지를 하얀 천에 담았다. /하라 켄야 제공

―구체적으로 당신의 작품에서는 어떻게 햅틱을 구현했는가.

"산부인과·소아과 병원인 우메다(梅田) 병원의 사인(sign)시스템 의뢰를 받았을 때다. 임산부가 출산 후 마음의 평화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청결 상태가 좋지 않은 민박처럼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새하얀 면(綿)으로 양말이나 샤워 캡 형태의 사인을 만드는 것이었다. 줄에 매달거나 벽에 붙여서 때가 묻으면 벗겨서 빨 수도 있다.〈사진〉 물론 귀찮은 방법이다. 애초에 쉽게 더러워지지 않는 비닐을 쓰거나, 흰 색 대신 짙은 색으로 사인을 만드는 것이 당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발상을 반대로 바꾸어봤다. '더러워지기 쉬운 것을 항상 청결하게 한다'는 것을 실천해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치 고급 레스토랑이 하얀색 테이블보를 사용하는 것처럼 최고의 청결함을 보이기 위해서였다.

긴자의 마쓰야 백화점을 리뉴얼 할 땐 '공간의 감촉'을 디자인했다. 백색 건물 외벽에 반구(半球) 형태의 물방울 무늬를 요철 모양으로 찍었다. 쇼핑백도 건물 외벽처럼 백색에 물방울 패턴을 넣어 VI(비주얼 통합·Visual Identification) 작업을 했다. 또 리뉴얼 오픈 광고용 포스터엔 자수를 놓고 지퍼를 달아 촉감을 마케팅의 새로운 수단으로 활용했다."

건물의 외벽이 열린다? 하라 켄야는 마쓰야 백화점 리뉴얼 공사 기간 동안 지퍼가 조금씩 열리는 형태로 가림막을 바꿨다. 리뉴얼에 대한 기대감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발상이다. /하라 켄야 제공

두 사례는 하라 켄야식 '발상의 전환'의 정수를 보여준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업 전략 역시 경쟁 기업과 다른 새로운 시각의 접근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게 어디 말처럼 쉬운가. 그에게 비법을 물었다.

"'새로움'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현재의 물건이 낡은 것처럼 보이도록 해서 새 것을 사도록 강요하고 과도한 소비를 부추기는 문화는 머지않아 반드시 쇠퇴한다. 익숙해져 있는 일상에서 신선한 빛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제로(zero)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창조지만, 분명히 알고 있을법한 것에 대해 '얼마나 알지 못했었나'를 다시 인식하는 것, 기존의 것을 미지화(未知化)해서 새롭게 받아들이는 것도 창조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햅틱과 함께 그의 디자인 이론의 양대 축을 이루는 '리디자인(redesign·다시 디자인한다)'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리디자인은 '합리적인 물건 만들기'를 위해 그가 제안한 사고방식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디자인해 보는 것이다. 지난 2000년 그가 건축가와 디자이너, 패션디자이너 등 각 분야 전문가 32명과 함께 개최한 같은 이름의 전시회 '리디자인전(展)'은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일상의 재발견에서 모색한 전시였다.

가운데 심이 사각형으로 된 화장지. 한번에 휙 풀리지 않아 쓸데없는 자원 낭비를 막았다. 리디자인전에 출품된 반 시게루 작품.

그 전시회에서 종이 건축으로 유명한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는 심이 사각형으로 생긴 화장지를 만들었다.〈사진〉 사각형이기 때문에 화장지를 당길 때 휙 풀리는 게 아니라 작은 저항이 생겨 오히려 불편하다. 하지만 불필요하게 종이가 많이 풀리는 것을 막아 '자원 절약'을 실현한 디자인이다. 후카사와 나오토는 홍차 티백 손잡이를 홍차가 제일 맛있어지는 시점의 색깔로 된 고리로 디자인했다.〈사진〉

왼쪽부터 리디자인전에서 후카사와 나오토가 선보인 홍차 티백. 홍차가 가장 맛있게 우러났을 때 티백의 고리와 같은 색이 된다. 사람들의 무의식적인 인지 행위를 포착한 디자인, 나뭇가지 모양의 성냥. 멘데 카오루 작품.

하라 교수는 이 작은 전시회에서 디자인의 과잉에서 탈피해 본질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구현했다. 그는 "홍콩, 밀라노, 상하이 등 전 세계 10여 개 도시를 순회 전시했고, 글래스고에서는 2만 명이 넘는 관객이 전시장을 찾았다"면서 "디자인이 지니고 있는 '합리성'이라는 본질에 세계가 다시 주목하고 있음을 느꼈다"고 말했다.



■디자인은 가까운 미래의 산업을 예견하고 보여주는 작업

―당신이 생각하는 디자인은 무엇이고, 디자이너의 역할은 무엇인가.

"지금까지의 디자인이 형태나 색깔에 신경 썼다면, 이제는 감각의 내부를 자극하는 디자인의 시대다. 디자인은 브랜딩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近未來)의 산업을 예견하고 보여주는 작업이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 산업의 미래를 비주얼라이즈(visualize·시각화) 하는 것이다."

비행기의 방향을 달리해 입·출국을 표시한 여권 스탬프. 작은 차이로 사람을 웃게 만든다. 리디자인전에 전시된 사토 마사히코 작품.

―저성장 시대, 경기 침체기에 기업들은 디자인 전략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디자인은 단순히 소재나 기술 개발로 차별화해서 매력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바꿈으로써 가까운 미래의 산업을 제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휴대전화를 디자인할 경우, 휴대전화를 '제품'으로 접근하지 말고 '커뮤니케이션의 형태'로 생각해야 한다. '휴대전화로 어떻게 소통이 일어날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해야 한다. 제품을 알리는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지금의 휴대전화 광고는 하나같이 제품에 탑재된 첨단 기술을 보여주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만약 휴대전화 신제품 광고 담당자라면 어떤 광고를 하겠는가.

"콩트 형태로 전화받는 장면만 50~100컷을 모아서 보여주고, 사람들로 하여금 등장 인물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상상해 보도록 하겠다. 50대 여성이 울고 있는 장면을 아무 소리 없이 보여줬을 때, 그 여성이 왜 울고 있을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형태보다는 소통 방식을 어떻게 해석해서 디자인을 반영할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한국과 일본 제품의 디자인 차이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한국은 '스타일링'에 관해서는 일본보다 훨씬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학생은 해외로 유학을 많이 간다고 하더라. 반면 일본은 국내파가 많다.

유학을 많이 간다는 것은 '글로벌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 글로벌은 생산·유통·금융 등 경제의 영역에 해당되는 용어이고, 문화는 글로벌한 가치가 아니다. 문화의 본질은 로컬리티(locality·지역성)에 있다. 자신의 문화를 자신의 언어로 고민하고, 그것을 세계적인 문맥으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자국의 문화를 다듬어서 외국 사용자들이 그들의 환경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세계 시장에서 '저팬 디자인(Japan design)'은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당신이 생각하는 일본 디자인의 정체성은 어떤 것인가.

"역사적으로 일본은 15세기 후반, 세계 모든 양식의 영향에서 피하려는 듯 평범하고 단순한 형태를 추구했다. 이 단순함은 서양의 '심플(simple)'과는 다르다.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을 담아내는 '빈 그릇'과 같은 것이다. 강한 메시지를 표현하지 않고, 다양한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는 '엠티니스(emptiness)'를 내보이는 것, 이것이 일본 디자인의 독창성이다. 내가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는 '무지(MUJI)'의 콘셉트도 바로 이 엠티니스다."

―일본에 비해 한국은 고유의 정체성을 아직 정립하지 못했다는 자성이 있다.

"솔직히 한국다움에 대해선 잘 모르겠다. 한국도 이제 스스로 한국다움에 대해 되돌아보고 정체성을 고민해봐야 할 시기다. 이미 지난 과거에서 놓친 부분이나 모르고 넘겼던 가치를 재발견해 한국다움을 찾아내야 한다. 일본도 그랬지만, 20세기 후반에는 모던한 것에 대한 강박으로 기술, 산업, 기능만 강조됐다. 이제는 그 과정에서 놓쳤던 가치를 되살려야 한다. 과거에서 현대적인 디자인의 소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이번에 한국에 와서 뭘 살까 한참 고민하다가 다기(茶器) 세트를 사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디자인 소스가 많은 것 같기 때문이다."

그가 머릿속에 한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뭘까. 그는 잠깐 생각하더니 세 문장을 뱉었다.

"의욕적(意欲的)이다."

"하이테크스기루(ハイ-テク過ぎる·지나치게 첨단 기술을 좋아한다)."

"(디자인적으로) 소니를 이겼다(?)"

단정적인 앞의 두 문장에 비해, 소니를 언급하는 부분에는 끝이 살짝 올라갔다. "소니와 비교하는 부분은 어떤 의미냐"고 되물었다. "삼성, LG 같은 회사들을 필두로 한국 기업들이 세계적인 디자인상도 많이 받고, 정책적으로도 디자인을 강화하고 있어 소니를 이긴 것 같다. 그런데 이게 너무 지나쳐 스타일링만 강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디자인으로 시장이라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라
―현실에서 '좋은 디자인'과 '잘 팔리는 디자인'은 다른 것 같다. 무엇이 바람직한 디자인인가.

"인기 디자인을 무턱대고 쫓아가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지 생각해봐야 한다. 과식을 했다고 생각해보자. 부른 배에 맞춰 벨트 구멍을 하나 더 뚫어 늘리고, 이것을 몇 번 반복하면 몸은 편안해진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몸은 그 편안함에 길들여져 뚱뚱해져 있고, 벨트는 구멍이 뻥뻥 뚫려 보기 흉해질 것이다.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좋아하는 것, 인기 있는 디자인을 지향했을 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장식이나 요소가 덕지덕지 붙은, 좋지 않은 디자인을 양산할 수 있다. 디자인은 씨에서 싹이 트는 부분을 건드려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씨가 멋진 싹을 틔울 수 있도록 '시장'이라는 토양 자체를 일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시장'이라는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소비자에 대한) 욕망의 에듀케이션(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개념인가.

"오늘날 소비자들의 욕구는 마케팅에 의해 빈틈없이 '스캔'된다. 지금 일본에서 팔리는 자동차는 일본인의 자동차에 대한 욕망을 정밀하게 스캔해서 제품에 반영한 결과다. 결국 상품의 모태가 되는 시장의 '욕망 수준'이 글로벌 시장에서 상품의 성패를 좌우한다.

감각이 뒤떨어진 나라의 시장 눈높이에 맞춰 만든 상품은 그 나라에서는 잘 팔리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팔리지 않는다. 반면 감각이 뛰어난 나라의 수준에 맞춰 만든 상품은 그 나라뿐만 아니라 후진국에서도 잘 팔린다. 결국 디자인은 단순히 마케팅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고, 궁극적으로 사용자의 욕망 수준을 '에듀케이션' 할 수 있어야 한다."

―오늘 보니까 "소니가 빨리 분발해야 하는데…"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소니의 분발을 촉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혁신 제품의 상징과도 같았던 소니가 지금과 같이 정체된 것은 무엇 때문이라고 보는가.

"테크놀로지의 성과를 일본의 미의식을 통해 표현한 소니와 같은 기업에는 항상 가능성을 느끼고 있다. 일본의 미의식은 '섬세, 정중, 정밀, 간결'로 요약된다. 이것을 현재나 미래의 문맥으로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소니는 자칭 '글로벌 기업'이지만, 일본인인 내게 소니는 늘 일본적인 기업으로 비쳐져 왔다. 글로벌을 대상으로 사업을 전개한다고 해서 일본적인 문화의 근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의 소니는 문화에 대한 의지와 미의식이 부족해졌다."

―경영자들은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을 구별하는 안목을 어떻게 가져야 하며, 디자이너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가.

"디자인이 단순히 제품 외관을 스타일링 하는 작업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이는 위험한 접근법이다. 기업의 비전을 담은 디자인을 해야 한다. 경영과 마찬가지로 디자인도 단기 사이클로 보지 말고, 긴 스팬(span)으로 생각해야 한다. 단기적인 이윤 추구를 위해 디자인을 도구로 삼을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장과 사용자의 수준을 끌어올려 세계적으로 우위성을 발휘할 수 있는 디자인을 해야 한다."

―세상이 요구하는 디자인은 끊임없이 변화해 가고 있다. 세상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디자이너는 어느 정도 경험과 연령을 쌓지 않으면 디자인할 수 없다. 순발력과 미성숙도 매력이 될 수 있지만, 원숙과 성숙, 세련과 억제도 디자인의 중요한 요소다. 우아함은 '절제'라고 하는 태도에서만 탄생된다. 나는 20대엔 디자인을 하고 싶어 발버둥치며 돈을 모았다. 그땐 허공에 둥둥 떠서 지내던 시절이다. 두 발을 땅에 붙일 수 있게 됐다고 느낀 건 최근이다."

―화제를 좀 바꾸자. 오세훈 서울시장은 간판 정비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신축 등을 통해 서울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디자인적 관점에서 서울을 어떻게 보는가?

"도시의 매력 중 하나는 '혼돈'에 있다. 도쿄나 서울은 전통과 서양 문화가 혼란스럽게 뒤섞인 도시다. 전통이나 현대, 둘 중 어느 하나에 초점을 맞춰서는 혼돈의 매력을 살릴 수 없다. 일본은 행정적 규제가 느슨하기 때문에 어디에 어떤 건축을 지어도 대부분 허용이 된다. 결과적으로 혼돈이 생겨나지만, 동시대의 활력이 만들어진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건축물이 탄생돼 세계 건축 트렌드를 리드하기도 한다. 도시 만들기는 조급해서도 안 될 문제이며, 결론을 급하게 내려서도 안 된다."

인터뷰 말미, 기자는 그에게 조그만 선물 하나를 건넸다. 하라 교수의 '엠티니스'를 디자인 철학으로 삼고 있는 국내 IT업체 아이리버에서 그에게 꼭 주고 싶다며 기자에게 전달을 부탁한 '도미노'라는 USB메모리였다. 포장과 제품 디자인을 꼼꼼히 살펴보던 그의 입에서 후렴구처럼 또 한번의 탄성이 새나왔다. "야, 소니가 진짜 분발하지 않으면 안 되겠네!"

Posted by Takumi

2009/04/11 09:59 2009/04/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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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용 삼성전자 고문 '한국 대학교육' 비판
"경쟁하지 말자니…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나"
건전한 시민 기르는 데는 평준화교육 필요하지만
영재급 리더 못 키우면 글로벌 무대에서 낙오

▲ 윤종용 회장의 교육관은 잘 정리돼 있었다. 평소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주변에선 전했다. 원래 개별 언론 인터뷰에 잘 나오지 않지만, 질문을 교육 이슈에 국한한다는 조건을 달아 어렵사리 응낙을 받아냈다

윤종용 공학한림원 회장(65·삼성전자 상임고문)은 교육문제에 생각도, 할 말도 많은 것 같았다. "대학이 전공 공부를 적게 시킨다"고 대학 교육을 겨냥했고, 교육좌파의 평준화 지상론에 대해선 "경쟁하지 말자니, 지구상에 대한민국밖에 없단 말인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기업들의 봄 채용시즌, 윤 회장을 인터뷰한 것은 기업 관점의 교육론을 들어보기 위해서였다. 기업은 학생·학부모와 함께 공교육의 최대 수요자 중 하나다. 학교가 배출한 인재를 데려다 쓰는 기업이라는 '고객'은 교육에 무얼 기대하고 있을까.

윤 회장은 "대학이 학생들에게 전공과 기초학문 공부를 제대로 시키지 않는다"고 했다. "인도공과대학(IIT)은 전공 중심으로 180학점을 따야 졸업하는 것으로 안다. 반면 우리 대학은 120학점 정도만 따면 졸업시켜준다고 한다. 공학 같은 응용학문을 하려면 전공과 기초학문 실력이 튼튼해야 하는데, 대학이 충분히 가르치질 않는다."

윤 회장은 작년 5월 삼성전자 부회장에서 물러난 뒤 공학인재·기술 양성을 지원하는 공학한림원 일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글로벌 톱에 올려놓은 세계적 경영자인 그는 교육을 '글로벌 경쟁'의 관점에서 보고 있었다.

"글로벌 시대엔 세계가 경쟁하면서 발전한다. 세상에 우리뿐이라면 평준화해도 된다. 하지만 유엔 가입국만 해도 192개나 된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 거라면 이런 고민할 필요도 없다.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데, 우리만 경쟁을 시키지 말자고?"

―그래도 여론 조사를 해보면 평준화 찬성 의견이 우세하다.

"사회를 지탱하는 건전한 시민을 기르는 데는 평준화 교육이 맞다. 하지만 발전하려면 리더와 전문가가 필요하고, 평준화만으론 안 된다. IQ 150의 영재를 IQ 100에 맞추자는 것은 평준화가 아니라 역차별이다. 각 분야의 영재급 리더를 키우지 못하면 글로벌 무대에서 낙오하는 거다."

―평준화가 가져다준 장점도 있지 않은가.

"내 말은 평준화를 포기하자는 게 아니다. 건전한 시민을 기르는 평준화의 전체 틀은 유지하되, 소수 영재를 키우는 특수한 방법이 필요하다. 평준화를 깨는 게 아니라, 문제점을 탈피하고 극복하자는 것이다."

―중·고교 교육은 어떻게 평가하시나.

"중·고교에선 가르치는 과목 수가 너무 많은 것 같다. 잡다한 과목을 모조리 가르치면서도 정작 필요한 기초 교과는 제대로 안 가르친다. 입시부터 잘못됐다. 수학·물리의 기본도 모르는 고교생들이 수능 성적만으로 공대에 들어가니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

그는 "언젠가 국내에서 공부한 박사는 '서해안 꽁치', 미국서 공부한 박사는 '태평양 참치'라고 했다가 욕을 얻어먹은 일도 있지만…"이라며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욕먹어도 할 말은 하자.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는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밖에 나가 글로벌하게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야 한다. 미국에서 공부한 박사는 창의적 환경에서 공부할 수 있고,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다. 연어 새끼를 동해에 방류하듯, 큰물에 가서 배우라는 것이다."

윤 회장은 요컨대 상위 1~2%의 영재를 어떻게 길러내느냐에 국가 발전이 달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5년 전쯤 부산 영재학교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이런 영재학교 5개만 있으면 어떤 일이 있어도 대한민국은 미래가 밝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5개냐고? 한 학교당 200명씩 1년에 1000명의 영재만 길러내면 30년이면 3만명이 양성된다. 이들 중 절반이라도 각 분야 리더·전문가로 포진하고 있으면 대한민국은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영재교육을 할 만한 영재풀은 충분한가.

"한국인의 IQ(지능지수)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10년 전쯤인가, 일본 굴지 기업의 CTO(최고기술책임자)가 한국이 부럽다며 하던 말이 기억난다. '일본엔 영재급 인재가 수천 명 정도인데, 한국엔 2만명은 있다'는 것이었다. 자기들 나름대로 분석해본 모양이었다. 이런 영재들이 각 분야에서 활약해줘야 나라 전체가 발전한다."

(인터뷰 후 윤 회장은 비서를 통해 스위스 취리히 대학이 조사한 각국의 평균 IQ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자료에 따르면 홍콩의 IQ가 107로 1위이고, 한국은 106으로 세계 2위였다.)

―입학사정관제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

"기본적으로 찬성한다. 입학사정관이 우수하고 잠재력 있는 인재를 뽑을 수 있다고 본다. 물론 문제점도 많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고 부정할 게 아니라 보완해가면 된다."

그는 도구와 과학기술의 혁신이 역사를 발전시킨다는 '기술 사관(史觀)'의 신봉자다. 그 자신도 공대(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인 윤 회장은 '의대 쏠림' 현상을 어떻게 생각할까.

―요즘 공부 잘하는 최상위권은 의대·한의대로만 몰리는데.

"(의대·한의대에 몰리는 학생들이)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지금 당장 인기 있는 곳, 쉽게 돈 벌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같다. 지금 의대 들어가는 많은 사람은 나중에 개업은 고사하고 병원에 취직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이공계에 가면 미래에 희망이 있나.

"인류사(史)는 도구 발명의 역사다. 원시도구가 농업혁명을, 기계도구가 산업혁명을, 디지털도구가 디지털혁명을 가져왔다. 지금도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발전해가고 있다. 그게 뭔지 구체적인 모습은 잘 보이지 않지만 결국 공학과 과학이 만들어 낼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

그는 대한민국의 미래는 결국 교육에 달렸다면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나이스비트와 만난 자리에서 '미래가 뭐냐'고 묻자 '미래는 교육'이라고 하더라. '그럼 교육은 뭐냐'고 되묻자 '교육이란 배우는 법을 배우는 것(to learn how to learn)'이라는 것이었다. 이게 핵심이다. 단편적인 지식은 기억할 필요가 없다. 배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인데, 우리의 공교육은 지식 암기에 치중하는 것 같다."

―교육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갈랐다는 것이 지론이신데.

"산업혁명은 영국이 시작했지만 국민이 나태해지고 공학 교육을 경시했기 때문에 패권을 일찍 넘겨주었다. 상류층 중심의 관료 교육에 치중하고 공학 교육엔 소홀한 것이다. 그 사이 독일·프랑스는 국가가 나서 공대를 설립해 엔지니어를 키우며 급성장했다. 미국은 더 적극적이어서 특허 개념을 헌법으로 보호했다."

윤 회장은 "결국 실용적인 공학·기술 교육이 나라의 운명을 가른 것"이라고 정리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교육은 대한민국의 국운(國運)을 융성하게 해줄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Posted by Takumi

2009/03/30 16:54 2009/03/30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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