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원가 경쟁력 인정받아 GM·푸조·도요타 등에도 공급
압축기·브레이크 시스템 같은 주요 부품도 첫 국산화
하이브리드카 시대 대비 신기술 개발에도 힘써
- ▲ 대구시 달성군 한국델파이의 기술연구소에서 차량부품인 발전기의 소음을 측정해보고 있다.
10년 전 IMF 위기 이후, 대우그룹의 12개 주력회사는 모두 워크아웃을 당했다. 한데 유일하게 대우 계열사 중 한 곳만 쓰러지지 않았다. 바로 자동차 부품업체인 ‘한국델파이’(전 대우기전). 1984년 대우그룹과 GM이 50 대 50으로 합작해 설립한 곳이다.
이어 자사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대우자동차가 부도났을 때도 이곳은 도산 직전까지 갔지만 위기를 극복했다. 2000년 회사명을 ‘한국델파이’로 바꾼 뒤 2003년부터 흑자를 기록하더니 지난해엔 매출액 1조1000억원을 달성했다. 제동 장치, 조향 및 구동 장치 등 40여가지 넘는 자동차의 주요 핵심부품을 연간 200만대분 이상 생산해 세계 자동차 회사에 공급하고 있는 한국델파이의 경쟁력을 취재했다.
“세계는 2등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항상 아름답습니다”.
지난 11월 13일 대구시 달성군에 있는 자동차부품업체 한국델파이의 압축기 공장. 압축기(Compressor)란 차량 에어컨의 냉매를 압축시키는 것이다.
공장은 2교대 근무로 24시간 가동된다. 압축기 한 개를 제작하는 데에 필요한 조립 과정은 50가지로, 6초에 한 개꼴로 생산된다. 이렇게 생산되는 양이 연간 250만대에 이른다.
소독을 위해 에어샤워를 한 뒤 생산라인 구역에 들어갔다. 서너 명의 직원들이 조그만 부품을 기계 안에 끼워 넣는 간단한 작업을 하면, 부품을 끼우고 조이는 모든 과정이 자동화로 이뤄졌다. 가스 누출 정도나 내구성도 테스트했다. 한쪽엔 도요타와 포드 자동차에 쓰일 부품이, 다른 쪽엔 GM 자동차용 부품이 제작되고 있었다.
여기에서 생산되는 압축기는 1984년 우리 기술로 처음 국산화한 것이다. 한국델파이는 설립 이전부터 ‘국산화되지 않은 부품 중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자동차의 핵심 부품’을 생산 아이템으로 정했다. 수출 기지 마련을 위해 자체 경쟁력부터 확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어 회사는 알루미늄 라디에이터, 악슬(Axle), 브레이크 시스템을 국내 최초로 국산화하는 데에 성공했다. 1990년 35 대 65였던 국산 자재와 수입 자재 비율이 2007년 현재 80 대 20으로 바뀐 것도 이 덕분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한국델파이’는 1984년 당시 ‘대우자동차 부품(주)’이란 이름으로 설립됐다. 대우는 ‘월드카’ 생산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자동차 부품 산업을 육성해야 했다. 당시 대우자동차의 생산 물량은 연간 17만대 선으로, 그것만으론 부품 사업을 벌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수출 시장을 겨냥한 공장이 우선 필요했다. 부품마다 100만대 이상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한국에 처음 건설된 것이다. 이후 1989년 대우기전으로, 다시 2000년 한국델파이로 상호가 바뀌었다.
한국델파이의 지기철 사장은 “도요타 자동차의 경쟁력은 덴소·아이싱 같은 부품 업체, 독일차의 우수성은 보쉬나 지멘스 같은 부품업체에서 나오듯 한국차의 경쟁력은 우리가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대우와 GM이라는 든든한 ‘주인’이자 ‘고객’을 기반으로 설립된 대우기전에 ‘부품의 국산화’는 날개를 달아줬다. 수입 대체를 통한 외화 절감과 국내 자동차산업의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1997년 IMF 위기가 닥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대우그룹의 12개 주력회사는 모두 워크아웃 당했다. 국내 굴지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만도기계는 파산해 해외에 매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기전은 종업원의 원가 절감, 현금 흐름이나 수익성에 중심을 둔 선진 경영으로 재무 건전성을 확보했다.
시련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사 매출의 75%를 차지하는 대우자동차가 부도를 맞은 것이다. 이번엔 IMF 위기 때보다 더 크게 휘청거렸다.
- ▲ 한국델파이 기술연구소에서 핸들링 등 조향장치의 내구성을 테스트하고 있다.
GMDAT 영업3팀의 김진희 부장은 “당시 직원들은 몇 달간 월급을 받지 못했고 보험을 앞다투어 해약했다”고 한다.
한전에서는 대우기전에 전기를 끊겠다고 했고 은행 측도 대출을 해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다른 대우 계열사들처럼 공적자금을 받아 빚부터 갚고 위기를 모면하자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협력업체 200여곳까지 부도가 날 상황이었다.
2000년 대우기전은 ‘대우’라는 이름을 떨쳐내고 자립하자는 뜻에서 ‘한국델파이’로 개명했다. 일부 다른 대우 계열사들로부터 “대우 덕분에 돈 벌더니 먹고살기 어려워지니까 델파이에 기대려는 배신자”라는 비판도 들었다.
하지만 임직원은 물론 당시 외주 협력업체들까지 뜻을 모았다. 지기철 사장은 “외주 협력업체들이 어음 결제일을 연장시켜줬고 수출을 늘렸다. 500명의 임직원을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으면서, 이 시기를 이겨냈다”고 했다.
- ▲ 한국델파이 압축기 공장
본사를 서울에서 공장이 있는 대구시로 옮기고 확실한 체질 개선에 나섰다. 임종덕 기획팀장은 “단일 고객에 너무 편중되다 보니 그 고객이 흥하고 망하는 것에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며 “해외 시장은 물론 현대나 기아자동차 같은 국내 고객으로부터 기술력을 인정받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지기철 사장은 당시 직원들에게 “대우 계열사 출신을 가족으로 여기지 말고 고객으로 철저히 섬기라”는 엄명을 내렸다.
2003년 드디어 흑자로 전환했다. 이어 3년 만인 2006년 1조1000억원이라는 매출액을 달성하기에 이른다. 지기철 사장은 1조원 매출액 달성 그래프를 들고 직원들 앞에 섰을 때,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현재 전체 매출액 중 70%는 GM대우의 국내외 자동차 쪽에서 나오고 15%는 해외 직수출을 통해서, 나머지는 쌍용이나 현대·기아자동차를 통해 나온다.
오늘날 대구시 달성군의 한국델파이 경쟁력의 핵심은 바로 기술연구소에서 나온다. 도면에 제품을 설계하고, 타사 브랜드의 부품들을 갖고 와 벤치마킹하는가 하면 개발된 기술을 테스트하는 장소다.
지난 11월 13일 찾아간 한국델파이의 기술연구소엔 공기 조화 장치, 핸들을 조절하는 조향 기계, 제동 장치, ‘자동차의 컴퓨터’로 불리는 엔진 매니지먼트 시스템(EMS) 등이 있었다.
만들어진 샘플을 미리 시험해본다는 ‘모델 숍 & 테스트 실험실’. 자동차의 바퀴를 엔진과 연결하는 축이 고온과 저온에서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곰팡이 균에서는 기계가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운행할 때의 브레이크 소음은 어느 정도인지를 실험하고 있었다.
이상찬 기술지원실 팀장은 “샘플은 제작이 조금만 늦어져도 전체 제작 기간에 심각한 영향을 일으킨다”며 “신차가 나올 때마다 관련 샘플을 수백 개 만들어 테스트해봐야 한다”고 했다. 이미 있는 샘플도, 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수십 번 수백 번 또 개발한다고 했다.
이런 기술 연구 덕분에 품질과 원가 경쟁력을 인정받은 한국델파이는 매년 2억달러 상당의 부품을 세계 각국에 수출하고 있다. GM을 비롯해 르노, 피아트, 푸조 같은 회사의 자동차에 이곳의 부품이 들어간다. 기술에 있어 까다롭기로 소문난 일본 자동차업체 도요타와 스즈키 자동차에도 부품을 공급하고 있다. 중국, 인도, 대만, 말레이시아, 이란 등에 기술을 수출하기도 한다.
해외 시장 개척을 위해 2003년 4월 태국에 법인을 설립한 데 이어 지난 9월 중국 상하이 인근 창수에 두 번째 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델파이의 현재 고민은 ‘미래의 자동차 시대’에 어떻게 살아남느냐다. 휘발유 1ℓ로 100㎞를 달리는 하이브리드카 시대가 오면 자동차의 부품도 모두 바뀔 것이고,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고 고객이 어디로 움직이는지를 놓치면 시장에서 곧바로 도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기철 사장은 “그동안 우리가 많은 싸움에서 이겨온 것은 맞지만 이게 결코 끝이 아니다”라고 했다. 새 시대에 걸맞은 기술 개발과 고객 만족 경영으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짊어지겠다는 각오다. ▒.
- ▲ 지기철 한국델파이 사장
엔지니어 출신 지기철 사장
“또 쓰러질 순 없다
완벽한 품질관리로 일어서”
지난 11월 13일 대구시 달성군의 한국델파이에서 만난 지기철(62) 사장은 작업복과 운동화 차림이었다. 서울대 공대를 졸업한 뒤 30년 넘게 엔지니어로 일해온 그는 오전 7시30분에 출근한 뒤 운동화 끈을 매며 하루 문을 연다.
삼미사(현 삼미특수강)에서 일하다 1983년 대우기전(2000년 한국델파이로 개명) 설립을 위해 스카우트됐고 대우자동차 부도로 도산 위기를 맞았던 2002년 사장으로 취임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절망했고 앞이 깜깜했다. ‘쓰러진 회사의 사장으로서 인생을 마쳐야 하나’ 싶어 괴로웠다.”
한데 사장이 된 뒤 매출이 성장세로 뒤바뀐 비결이 무엇인가. “사장 한 사람이 잘한다고 회사가 잘되겠나. ‘다시 한 번 쓰러지면 안 된다’는 처절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다. 대우자동차가 GM에 인수되면서 생산량이 늘었고, 우리가 그 주문을 따라갈 수 있을 만큼 품질과 가격 면에서 경쟁력을 갖춰놓았던 면도 한몫했다.”
대우 부도로 12개 대우 계열사는 모두 워크아웃 대상이 됐는데 한국델파이만 살아남았다. “공적자금을 받아서 당장의 위기를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납품하는 200여개 회사까지 쓰러뜨릴 수 없었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완전히 체질을 바꿨다. 협력업체들도 도와줬고, 자진해서 회사를 나가는 직원들까지 있었다.”
IMF 위기나 대우 부도가 자체 경쟁력을 키우는 데에 도움이 된 건가. “그렇다. 우리는 대우와 GM이 50 대 50으로 투자해 설립한 회사다. 가만히 있어도 우리 물건을 사주는 든든한 ‘주인’이자 ‘고객’이 있었다. 한데 하루 아침에 대우가 망했다. 철저히 무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고객 만족 개념을 특히 강조하는데. “매출액 1조원을 달성했다고 성공했다고 볼 순 없다. 고객은 바뀐다. 고객을 모시듯 하는 건 금방 탄로가 난다. 마음 밑바닥에서부터 진정으로 고객을 섬겨야 한다.”
한 개에 몇 만원짜리 작은 부품을 팔아서 1조1000억원이란 매출액을 달성한 셈이다. “자동차 부품 시장은 원래 1원, 1전을 놓고 다투는 시장이다. 게다가 한 개가 잘못되면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완벽하지 않으면 무너진다. 설계 단계에선 물론이고 시험 과정을 수도 없이 거쳐야 하는 건 고객에 대한 기본 도리다.”
지기철 사장은 브레이크 부품 한 개를 들어올리며 “이런 것 하나가 언제 어디서 만들었는지 부품의 출생 이력을 따져서 문제 생길 때 즉시 리콜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평소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말씀을 강조하는데.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없다. 실천을 해야 한다. 도요타 자동차의 10대 개선책에도 ‘즉(卽) 실천’이란 게 있다.”
몇 차례 위기 과정을 겪으며 회사며 직원이며 충분히 담금질 과정을 거친 것 아닌가. “위기 의식도 그때뿐이다. 우리 회사가 지금 당장 먹고살 건 있다. 하지만 기업은 영속돼야 한다. 나 한 명의 문제가 아니다. 리더들부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상경계나 인문계가 아닌 엔지니어 출신인데. “회사 사장이 상경계 출신이어야 한다는 점에 비판적이다. 미적분의 세계인 이공계는 결코 좁은 세계가 아니다. 엔지니어도 결국 장사를 해야 한다. 설계도 조직도 모두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다.”
세계적 디바 마리아 칼라스의 목소리를 좋아한다는 지 사장은 음향 기기로 소리를 만들어내는 음향 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는 “계획을 세우고 행하다가 안 되면 다시 고쳐나가야 한다”며 “그러다 보면 결국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룰 수 있다”고 했다.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