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교과서에 실린 '현대차 파업'

세계 130개국 1856개 고등학교가 흔히 'IB 과정'이라 부르는 '국제 대학입학 자격 프로그램(IBDP·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을 채택하고 있다. 2년간의 IB 과정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면 유럽과 미국의 상당수 대학에 특례 입학할 수도 있고 장학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 IB 과정의 선택과목 중 호주에서 출판된 2007년판 경영학(Business and Management) 교과서에는 한국의 현대자동차가 등장한다. 홍콩 S고교의 담당 교사는 "이 책은 IB 경영학을 가르치는 전 세계 대부분의 고교가 채택하는 교과서"라고 설명했다. 교과서는 61쪽 상단에서 사원들의 자발적 참여의 중요성을 설명하면서 "반대로 불만 있는 사원들은 노동쟁의도 일으킨다. 예를 들어 '한국 최대 자동차회사인 현대(Hyundai, South Korea's largest car maker)'는 2006년에 47%의 순이익 감소를 기록했다. 이는 주로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으로 현대차의 연간 국내 판매량보다도 많은 14만1882대를 생산하지 못했다"고 돼 있다. 이어 "그러므로 경영진은 가능한 한 종업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동기 부여를 확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이 교과서는 세계 굴지 기업들의 215개 실례를 들면서 750쪽에 걸쳐 조직, 인력 관리, 회계, 마케팅, 경영전략 등을 설명하고 있다. 박지성 선수가 뛰고 있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이미지 관리를 위해 높은 가격을 제시한 온라인 도박회사 대신에 생명보험회사와 싼값에 후원 계약을 맺은 경위, 러시아 석유 재벌 아브라모비치가 첼시 구단에 천문학적 거금을 투자한 과정 등 10대 학생들의 관심을 끌 만한 사례도 있다.


▲ 세계 1856개 고교가 운영중인 IB 과정의 선택과목 중 하나인 경영학 교과서 61쪽 상단. 노란 형광펜으로 칠한 부분에 “예를 들어 ‘한국의 최대 자동차 회사인 현대(Hyundai, South Korea’s largest car maker)’는 2006년에 47%의 순이익 감소를 기록했다. 이는 주로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으로 현대차의 연간 국내 판매량보다도 많은 14만1882대를 생산하지 못했다”고 설명돼 있다.


현대차의 세계적인 경쟁 회사들의 사례도 많다. 기술적 결함을 보완하려고 새 모델 출시를 연기한 일본의 도요타자동차, 미국 포드자동차가 특정 차종의 이름을 바꾼 역사와 판매량 변화, 프랑스 푸조자동차가 307 모델을 리콜한 배경, 독일 벤츠자동차가 1~3년간 품질 보증을 실시한 여파 등등…. 그러나 아무리 살펴봐도 다른 10여개 경쟁사들의 사례는 현대차만큼 악성(惡性)은 아니다.

사실 머리띠를 동여맨 한국의 강성 노조나 불법 파업을 떠올릴 때 현대차만한 곳도 드물다. 1987년 노조 설립 이후 22년이 흘렀지만 1994년과 2007년을 제외한 20년간 매년 파업을 했다. IBDP 교과서에 등장하는 2006년에만 34일간의 파업으로 1조6443억원의 손실을 봤고, 20년간 352일을 파업해 107만대의 생산 차질과 11조원의 매출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울산광역시에서 현대차와 함께 강경 투쟁을 주도하던 쌍두마차 현대중공업은 1995년 이후에는 14년째 무분규를 이어가며 조선 분야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다. 울산시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지난 연말에 현대중 노조 간부들의 중국 연수를 주선했다. 연수를 다녀온 오종쇄 위원장은 연초에 "중국의 조선산업을 직접 눈으로 보니 흥분이 가시지 않는다. 중국 조선산업의 급부상 속에서 앞으로 (우리) 조선산업과 노사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는 현대차 임직원들의 회사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얼굴 같은 글로벌 기업이다. 급변하는 세계 경제 환경 속에서 언제까지 한국인 학생들에겐 수치심을 안기고 외국 고교생들에겐 '파업' '생산 차질' 같은 부정적인 이미지로 한국을 배우도록 만들 것인가.

▲ IB 과정을 운영중인 세계 1856개 고등학교가 선택 과목으로 가르치는 2007년판 경영학 교과서 표지.

Posted by Takumi

2009/01/14 10:50 2009/01/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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