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해결사' 로렌스 서머스 前 美재무장관 단독 인터뷰
"한국 제조업 위기 심각…일본식 장기침체 올 수도"
"97년 외환위기, 금융결함·거시정책 실패·냉혹한 국제경제가 빚은 비극"
-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와 김인호 경제수석의 사표가 전격 수리되고, 주식회사 한국이 부도위기에 처했음을 시인한 한국경제 치욕의 날.
이날 태평양 건너편의 미국 재무부도 다급했다. 로렌스 서머스(Lawrence Summers·53) 당시 재무부 부(副)장관은 G7국가 비상회의를 소집했고, 금융혼란을 우려한 앨런 그린스펀 당시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부장관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서머스 부장관은 미 재무부 구내방송으로 “아시아팀은 로버트 루빈 장관실로 모이라”고 통보했다. 넥타이를 풀어헤친 서머스 부장관과 신발을 벗은 루빈 장관, 전문가로 구성된 아시아팀은 심각하게 ‘한국 쇼크’ 처방전을 검토했다.
2주 뒤인 12월 3일, 국제통화기금(IMF) 캉드쉬 당시 총재는 한국에 대해 550억 달러의 지원패키지를 제시했다. 하지만 잠깐 회복세를 보이던 원화와 주식시장은 외국인들의 투매(投賣)로 다시 추락하기 시작했고, 한국의 위기상황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천재 경제학자’로 불리는 서머스 부장관은 또 다른 해법을 내놓았다. “베트남 상황(실속 없었던 점진적 확전)의 재판(再版)을 피해야 한다.” 채권은행들의 자발적 채무정지(standstill), 한국정부의 보다 강력한 개혁 패키지, 국제통화기금·미국·기타 채권국들의 추가적 자금 지원. 12월 24일 발표돼 ‘산타의 선물’로 불린 이 패키지는 한국 외환쇼크를 잠재웠다.
■ “외환위기 재평가 땐 당시의 상황 고려해야”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볼 수 없었던 ‘IMF 구제패키지’를 막후에서 디자인하고 총지휘한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외환위기 이후 그는 재무부 장관으로 승진했다). 외환위기 10년을 맞아 지난 10일 한국을 방문한 서머스 전 장관을 위클리비즈가 단독 인터뷰했다. 그는 삼성증권이 개최한 ‘삼성글로벌 인베스터스 컨퍼런스’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
외환위기 원인과 처방에 대한 재평가가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금, 그는 10년 전 자신의 위기 탈출 처방전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그는 “한국경제가 안정궤도에 진입해 한숨을 돌린 지금의 상황에서 긴박했던 당시의 위기상황을 재단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회상할 것을 주문했다. “한국이 IMF에 구제요청을 했던 이유가 뭔가요? 당시 한국경제는 외부의 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죠.” 그는 IMF처방 중 논란이 되고 있는 고금리 정책에 대해서도 “원화가 자유낙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투자자들이 원화를 들고 있게 하려면 높은 금리가 필수적이었다”며 “고금리 정책이 당시 투자자들의 심리 역학을 바꾸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강조했다.
서머스 전 장관은 “IMF위기 때 한국의 어머니들이 금반지를 내놓으면서 자식들과 남편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 않은 것은 가슴 찡하게 하는 비극이었다”며 “하지만 그런 비극이 일깨워 준 부분은 값졌다”고 말했다. 10년 후 지금, 한국은 금융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고, 거시경제정책 향상과 투명성 강화, 금융기관의 고질적인 정경유착 해소 등 괄목할 만한 성장을 했다는 것이다.
■ 저임금 제조업 국가, 한국 맹추격하고 있다
‘IMF쇼크’로 기억되는 한국의 외환위기는 태국에서 시작됐다. 태국 바트화의 추락은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을 거쳐 한국을 강타했고, 이듬해 러시아, 브라질로 확산됐다. 서머스 전 장관은 나비의 날갯짓이 허리케인을 일으키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경로로 퍼져나가는 국제금융시장의 전염성을 ‘컨트롤 타워’에서 목격했다. 그는 아시아위기 10년이 지난 지금 또 다른 위기의 가능성을 더듬고 있다.
그는 “각종 자산의 버블이 붕괴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게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형 충격’은 없겠지만, 서서히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우는 장기적인 경제 침체에 효율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같은 맥락에서 한국 경제를 진단했다. “한국이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대형 쇼크에 시달리지는 않겠지만, 대신 ‘일본식 장기 침체’를 겪을 수 있다.” 그는 한국의 제조업을 걱정했다. “한국이 일본과 같이 24~25년 가량의 경기 지체를 겪게 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제조업의 위기가 심각해질 수 있다. 저임금 제조업 국가들이 혁신에 매달리면서 한국을 맹추격하고 있다.”
■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정책 결정 메커니즘
성공적으로 미국경제를 이끌었다고 평가되는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정책 조율엔 비결이 있을까?
서머스 전 장관은 먼저 클린턴 대통령에 대해 “항상 귀를 열어 놓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리더”였다고 평가했다. 그의 개방적인 리더십하에서, 루빈·그린스펀·서머스 등 경제팀은 몇 시간씩에 걸친 거침없는 토론을 통해 굵직굵직한 경제 정책을 수립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바로 끊임없이 생각하려고 하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미국 정부나 다른 국가들도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 미국 재무부 장관, 하버드대 총장 등을 거친 그는 한때 백악관 출입 기자들 사이에서 기피인물이었다. ‘가시 돋친’ 말투로 퉁명스럽게 대꾸하기 때문이다. 그의 가시 돋친 말투는 외국기자 앞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인터뷰 내내 그는 당당했고, 일부 곤란한 질문을 받으면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이 다소 괴팍하지만 매우 중요한 인물에게서 한국의 IMF 구제금융 당시 상황과 한국 경제를 향한 충고, 세계 경제의 진단에 대해 들어봤다.
- 로렌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부 장관은 인터뷰 내내 여유 있었다. 세계은행 선임이코노미스트?미국 재무부 장관?하버드대 총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그는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 당시, IMF 구제금융패키지를 막후에서 디자인한 인물이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세계경제 큰 풍파 맞았을 것
한국엔 비록 고통이었지만 금융개혁·투명성 이루고 고질적인 문제해결…
■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의 복기(復棋)
―한국의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당시 미 재무부 부장관으로 재직하며, 그 누구보다 이 문제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97년 아시아 각국, 특히 한국이 맞은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진단하셨나요?
(그는 천장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가볍게 숨을 고른 후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국 정부의 치명적인 실수 때문이었죠. 가장 큰 실수는 역시 거시 경제 정책 운용의 실패였습니다. 한국의 외환 보유고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어요. 매우 투명하지 않은 경제 시스템 역시 문제였죠. 극도로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허점을 감추기 위해 무수한 서류(paper work)상 도구들이 동원됐고, 결국 현실에서 그 폐해가 한꺼번에 터져버린 거죠. 수면 아래 잠복하고 있던 어마어마한 문제들이 세상에 ‘훤히’ 드러났을 때, 한국을 비롯한 세계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국제 금융 시스템상 문제도 심각했는데….
“당시 태국과 인도네시아의 외환 위기로 인해 세계적으로 아시아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하고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도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경제 대국 일본은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에 허덕이고 있었죠. 물론 각각의 요소들은 단순한 경제 침체만을 가져올 수 있는 성격의 것들이었지만, 이 요소들이 복합돼서 나타났기 때문에 세계적인 쇼크가 아시아를 덮친 겁니다. 결과적으로 정리해보면, 한국의 경제 위기는 금융 분야의 구조적인 결함, 거시 경제 정책의 운용 실패로 인한 외환 보유고 조절 실패, 녹록하지 않았던 국제 경영 환경이 모두 한데 뒤엉켜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97년 당시 태국에서 처음으로 외환 위기가 시작됐을 때, 한국으로 번질 것이라는 걸 예상했습니까? 왜 사전 경고를 하지 못했나요?
“솔직히 우리는 태국의 위기가 한국으로까지 번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일단 당시 아시아 전역에 금융 위기가 불어 닥친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시장과 투자자들은 정부가 발표하는 객관적인 정보에 따라, 일종의 ‘조짐’에 의존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과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났다는 사실 자체를 밝히는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기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끝까지 숨기고 있었죠. 결국 미국 추수감사절 시즌, 한국은 국가 부도(default) 사태를 불과 며칠 남겨 둔 상황에서 외환 보유고가 바닥이 났다는 사실을 터뜨렸습니다. 이게 바로 내가 아까 한국 경제가 매우 심각한 ‘투명성 부족(lack of transparency)’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당시 한국의 외환위기를 보는 미국 정부 내의 시각은 어땠습니까?
“우리는 한국의 금융 위기를 크게 두 가지 국면으로 나눠서 분석했습니다. 11월 말에서 12월 초까지가 첫 번째 시기입니다. 이 당시 한국 정부는 경제 정책의 조정보다는 전적으로 IMF의 자금 지원에 일방적으로 기댔습니다. 그러자 상황이 더욱 악화됐죠. 원화 가치는 더 내려가고, 외국 자금들이 급속히 빠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12월에 IMF의 정책권고 내용보다 한국이 자본시장 개방을 더 확대할 경우 구제금융을 조기에 제공하는 협상을 했습니다. 당시 김기환 특사가 소위 ‘IMF+알파(?) 협상’이라 부른 것이었죠. 이때부터 한국은 서서히 신용을 회복해 나갔습니다. 투자자들과 채권자들은 한국의 대통령 선거 후 자본 시장 개방 등 일련의 약속이 지켜질 것인지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김대중 당선자가 이에 대해 확고한 의지를 피력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던 거죠.”
(당시 대통령 후보 중 선두를 달렸던 김대중 전(前) 대통령은 당선이 될 경우 IMF와의 타결조건을 재협상하고 싶다고 말했고, 이에 따라 외국투자자들은 IMF 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될지 매우 의심스럽게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이 실제로 당선되자,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더욱 하락했다. 하지만 당선 이후 김 전 대통령이 확고한 개혁의지를 밝히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한국이 지원을 요청했을 때, 미국이나 일본 등 개별국가들이 지원을 거부하고 한국을 IMF 구제패키지로 가도록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당시 일본이 한국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미국이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사실입니까?
(외환위기 음모론은 한국의 외환위기가 미국 정부·IMF·월가의 금융자본이 연대해 발생한 것으로, 외환위기를 부추겨 이 와중에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일본이 한국의 지원요청을 거부한 것이 구체적인 사례로 제시되곤 해왔다.)
“사실이 아닙니다. 당시 미국 정부와 일본 정부에서 지배적인 의견은 한 국가에 어마어마한 자금을 지원한다 해도, 해당 국가의 거시 경제 정책의 기본적인 틀이 변하지 않으면 그 국가 경제가 살아나는 게 불가능할 뿐 아니라 막대한 지원 자금 역시 물거품이 돼 버린다는 것이었습니다. 끊임없이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한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면 경제적인 개혁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이고 외교적인 요소들에 휘둘릴 수 있다고 판단했던 거죠.”
―그렇다면 IMF 구제 패키지는 어떻게 다릅니까?
“강제성이죠. IMF의 지원은 자금 지원 대상 국가의 정책 변화를 필연적으로 수반합니다. 당시 한국에 필요했던 것은 ‘단순한 지원’이 아니었어요. 바닥부터 곪아 있던 경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절실했습니다. 미국이 가장 우려했던 것은 강력한 정책 변화 없이 단순한 자금 지원을 통해서는 결코 한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정상화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지원금을 투입했다면 몇 달간 ‘일시적 수혈’은 될 수 있었겠지만,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전혀 도움이 안 됐을 겁니다.”
―처음 미국 재무부는 한국에 대한 지원에 부정적이었으나, 나중에 미 정부가 외교안보 분야에서 지원을 강조해 결국 지원에 나서게 한 것이 맞습니까?
“그것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루빈 장관의 최근 저서를 보면 미국이 한국의 금융 위기 사태 해결에 개입하게 된 경위가 자세히 나와 있어요. 아시아 경제 위기로 인해 미국 재무부는 매우 큰 혼란에 빠져 있는 상황이었어요. 한국 사태를 파악한 후 그 여파를 면밀히 분석한 건 재무부였습니다. 그만큼 가장 큰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부서이기도 했고…. 따라서 오히려 미국 재무부가 주도적으로 나서 국무부를 설득해 한국을 위한 국제적인 지원에 나섰다고 하는 게 맞겠죠. 당시 우리가 생각해 낸 최선책은 IMF를 통한 지원이었습니다.”
(로버트 루빈 장관의 저서 ‘글로벌 경제의 위기와 미국(In an Uncertain World)’에서는 한국 문제를 놓고 당시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루빈 재무장관이 서로의 소신을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미 재무부가 경제적인 생각 때문에 지정학적 배려가 불충분하다며 미국이 인도네시아에서처럼 IMF 및 (미국의) 환율안정화기금을 이용해 한국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신속히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루빈 장관은 경제적 안정이 되살아나지 않으면 지정학적 목표도 성취되지 않는다고 동의하지만, 충분한 개혁의지가 없는 상태에서 IMF와 미국이 금융지원 의지를 공약하면 한국이 본궤도를 되찾아갈 확률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 “IMF의 권고 사항은 불가피했다”
―그때 만약 한국경제가 부도났다면 세계경제에 어떤 파급효과를 미쳤을까요?
“잠재적으로 매우 큰 위협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아시아 지역의 금융 기관들은 세계 금융 기관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시 11위 경제대국이었던 한국이 지급불능(모라토리엄)을 선언해 한국의 금융 기관들이 차입금을 갚지 못하고, 통화를 태환할 수 없는(inconvertible) 형태로 전환하게 되면 세계 경제에 어마어마한 풍파가 불어 닥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이를 필사적으로 막으려 했던 겁니다.”
―IMF 관리하에서 대우 등 재벌기업을 비롯해 수많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도산했습니다. 당시 강제적인 고금리 정책이 꼭 필요했었다고 보시나요?
“사실 그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는 상황에서 반대 가설(counterfactual)을 설계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당시 한국의 가장 큰 문제점은 원화 가치가 거의 ‘자유 낙하(freefall)’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단 원화 가치를 잡는 게 가장 시급했어요. 진화(鎭火)를 위해선, 화폐를 많이 찍어내는 것보단 덜 찍어내는 게 유리하죠. 이는 당연히 고금리 정책을 수반합니다. 나는 강력한 고금리 정책을 통해 일단 신용을 회복하는 게 맞는 선택이라고 주장했고, 지금도 이 생각엔 변화가 없습니다. 물론 당시 그러한 정책이 필수 불가결한 것인지는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강력한 고금리 정책이 필요이상으로 국내 경기를 위축시켰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한국 경제가 결국 안정 궤도에 진입했다’는 현재의 결과만을 놓고 보기 때문에 ‘당시 좀 더 느슨하게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하지만 만약 그 당시 강제적인 고금리 정책이 없었다면 과연 한국 경제가 안정될 수 있었을까요? 대답은 확실한 ‘노(no!)’입니다. 고금리 정책은 당시 상황의 역학(dynamics)을 바꾸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당시 가장 큰 문제는 투자자들로 하여금 한국이 자본을 투입할 만한 매력적인 나라임을 입증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본을 시급히 빼내야 할 곳이 아니라….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자본의 대가(price on capital)인 이자율이죠. 따라서 광범위한 IMF 정책 권고 사항은 옳은 선택이었고,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이 이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세계 석학 가운데도 지나친 고금리 정책으로 긴축의 정도가 지나쳤고, 금융기관에 대한 건전성 요구가 과도했다고 IMF 처방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분명히 있지 않나요.
“당시 한국이 IMF에 구제 요청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한국 경제가 지원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nonviable)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만약 의사를 찾아가게 됐다면 그건 이미 어마어마한 고통에 시달리기 때문이겠죠. 그렇다고 의사를 탓하는 환자가 있습니까? 오히려 의사를 탓하기보다는 내가 치료를 받으러 이곳에 오게 한 바로 그 원인을 해결하는 데 몰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한국은 지금 의사를 탓하는 것처럼 비칩니다. 의사를 찾아 갔을 때는 아픈 곳이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을 치료해야 합니다. 물론 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는 있지만, 환자는 일단 자신의 병을 키운 원인과 상황을 탓해야지, 결코 의사를 탓해서는 안됩니다.”
―외환위기 당시 워싱턴 특파원으로서 IMF의 결정과정을 취재하면서, 한국의 외환위기가 고통스럽지만,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는 ‘숨겨진 축복(disguised blessing)’이 아닌가 고민해보곤 했습니다.
“사실 한국인들 중 그 누구도 금융 위기를 원하지 않았을 겁니다. 당시 한국 언론에 나온 기사 중 유난히 관심을 끌었던 것은 한국의 어머니들에 관한 기사였어요. 그들은 나라를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장롱 깊숙이 숨겨둔 금은 반지를 꺼냈습니다. 자식들과 남편들이 끔찍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을 그냥 보고 있지만은 않았던 것이죠. 가슴을 짠하게 하는 비극이었습니다. 나는 단지 결과가 좋다고 해서 IMF 체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지는 않아요. 결국 어떤 식으로든 IMF는 한국에 비극이었으니까…. 다만 이러한 비극이 일깨워 준 부분은 값졌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금융시스템이 획기적으로 개선됐고, 거시 경제 정책이 향상되고, 투명성이 강화됐죠. 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종금사들의 고질적인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됐죠. 과정 자체만 드라마틱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거예요.”
세계경제 뒤흔들 가능성
한국은 아시아 혁신 주역
한·미 FTA는 양국 모두 이득될 것
■ 자산버블 붕괴로 인한 위기 닥칠 우려
―루빈 전 장관이 전망했듯이, 세계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위기보다 더 큰 경제위기가 또다시 닥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역사는 항상 정확히 반복되지 않아요. 멕시코나 한국에 있었던 경제적인 위기가 또다시 되풀이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걱정하게 만드는 건 오히려 1990년 대 일본과 같은 성격의 경제 위기예요. 일본은 디플레이션으로 허덕였고 충분한 수요가 없어 장기 불황에 시달려 왔죠. 결국 각종 자산의 버블이 붕괴되면서 이로 인해 세계적으로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현상이 확산될 수 있다는 게 세계 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이 될 겁니다.”
―중국 경제가 계속해서 높은 성장률을 유지할 것으로 보시나요?
“세계 경제학사를 보면 상당히 많은 학자들이 우울하게도 잘못된 예견을 내놓아 망신을 당한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 나도 그 점을 항상 경계하고요. 나는 중국이 현재 마주하고 있는 여러 도전들엔 눈을 감고, 장밋빛 미래만을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중국 경제의 가장 심각한 걸림돌로는 어떠한 것들을 꼽으시나요?
“일단 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한 경제적 번영이 내륙 지방으로 빨리 퍼져나가야 합니다. 또한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많은 인력들이 제조업 쪽으로 갈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정책 역시 중요합니다. 중국은 현재 여타 국가들에 비해 국제적·개방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중국의 성장이 전적으로 실질적인 자본의 축적(accumulation of the capital)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투기심리·환율 정책 등에 기대 이루어지는 측면 역시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이 결국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 보십니까.
“ 일단 ‘객관적’인 잣대를 놓고 비교하는 게 중요해요. GDP 총액과 1인당 국민 소득, 실질 구매력이 반영된 여러 지수들을 놓고 비교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인구는 미국의 4배입니다. 따라서 두 나라의 GDP 규모는 거의 같은 수준이더라도 중국의 1인당 GDP는 미국의 4분의 일에 불과하겠죠. 구매력평가(purchasing power parity)를 통해 비교하더라도, 두 나라 총 경제 규모가 비슷해지기 위해선 적어도 15년이라는 기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솔직히 나는 우리가 아무리 늙어 증손자를 볼 나이가 돼도 중국과 미국의 실질적인 삶의 수준이 비슷해지는 건 보기 힘들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일본의 경기가 실질적으로 회복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일본 경제에 근본적으로 잠재돼 있는 위협 요소들에 더 눈이 갑니다. 일단 인구 통계상으로 봤을 때, 고령화가 문제입니다. 또한 전통적으로 일본이 강력한 우위를 지켜왔던 산업 부문에서 비슷한 수준의 기술력을 앞세운 저임금 인근 국가들의 도전이 심각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머뭇거리게 하는 경직된 시스템 역시 걱정거리입니다. 이런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면서 일본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한 병폐가 몇 년 전보다는 덜 심각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사실 한국 경제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말하기가 조심스럽네요. 현재 한국엔 세계적으로 존재감이 확연히 느껴지는 기업들이 꽤 됩니다. 또한 아시아 지역에서 혁신의 선두주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어요. 하지만 우려도 있습니다. 나는 한국이 일본과 같이 24~25년가량의 경기 지체(lag)를 겪게 되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특히 제조업의 위기가 심각해질 수 있어요. 저임금 제조업 국가들이 한국을 위협하고 있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고, 이들 역시 혁신에 매달려 한국을 추격하고 있는 상태니까요.”
―미국과의 FTA는 한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십니까?
“나는 한미 FTA 역시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살펴 봤을 때 분명 양국에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엔 상당한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어요. 미국의 경우, 각각의 무역 장벽(trade barrier)규정은 법적으로 명시(explicit)돼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엔 무역 장벽이 비관습적·정서적·비공식적(informal)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무역관련 법규와 관련, 상당수의 물음표들이 놓여 있는 상황이고 이는 격렬한 논쟁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생산자(producer)들 사이에선 한국 시장에 진입할 때 획일적으로 통용되는 명확한 규칙이 없다는 우려가 팽배합니다.”
―한국경제는 누구를 모델로 삼아야 할까요? 유럽식 복지 국가입니까 아니면 미국식 경제 모델입니까?
“일단 특정 국가 모델을 잡아 모방하는 데는 항상 주의가 필요합니다. 하나의 경제 모델이 다른 경제 모델에 비해 더욱 뛰어나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각 국가마다 자신에게 맞는 경제 모델을 발굴해야 하니까…. 미국은 활발한 기업가 정신이 끊임없이 성장을 향한 에너지를 제공하고 있다는 게 좋은 점이죠. 현재 미국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하는 데 기반이 되는 교육 시스템·의학 기술 역시 배울 점입니다. 물론 ‘한국에 맞는 것은 이거다’라고 딱히 집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미국의 장점·세계의 장점들을 유연하게 끌어다 쓰면 좋을 겁니다. 물론 미국 역시 다른 국가들로부터 배울 장점들이 있겠죠.”
■ 클린턴 경제팀의 장점
―미국의 클린턴 전 대통령,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로버트 루빈 당시 재무장관을 평가한다면?
“일단 클린턴 미국 전 대통령 정부에서 그린스펀 전 FRB 의장, 로버트 루빈 등과 함께 팀을 이뤄 일하게 된 것은 저에겐 매우 큰 축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불확실성이 가득한 경제 분야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결정들이 모두 다 옳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했던 건 바로 우리가 하는 모든 결정은 매우 깊은(profound) 논의를 거쳐 탄생했다는 점입니다. 클린턴 대통령은 항상 귀를 열어 놓고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는 리더였습니다. 우리는 자유로운 분위기를 바탕으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열렬한 토론을 벌일 수 있었어요. 모든 결정을 할 때 가능한 한 그 결정이 가져올 수 있는 무수한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애썼습니다.”
―당시 클린턴 행정부가 내놓은 성공적인 경제 정책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수많은 ‘가능성의 세계’를 열어 놓음으로써 우리는 효율적으로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성공적이었던 것은 바로 끊임없이 생각하려 하는 ‘에너지’가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이런 문화가 정착돼 있던 클린턴 정부에서 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내가 행운아였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결코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가정에 기반해 각각의 상황에 따른 나름의 대비책을 철저히 만들어 놓을 수는 있습니다. 나는 앞으로 미국 정부나 다른 국가에도 이런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시스템 전체를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