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도 인정한 ‘1조 원의 사나이’

‘로컬’로 성공한 글로벌주의자… “영국 테스코에 홈플러스 역수출”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

이승한 누구인가?
1946년 경북 왜관 출생
1974년 삼성그룹 비서실 기획팀장
1978년 삼성물산 런던 지점장
1994년 삼성테스코 대표이사
2004년 한양대 도시공학박사
2004년 하버드 대학 운영상임이사
2006년 영남대 명예 경영학 박사
2007년 창의서울포럼 공동대표

1999년 등장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4년 만에 업계 12위에서 2위로 올라서며 국내 유통업계의 판도를 바꿔 놨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사장은 ‘글로컬리제이션(현지화 전략)’과 ‘신바레이션(신바람을 뜻하는 한국적 기업문화)’이라는 창의적 경영기법을 창출해 기록적 경영 성과를 이룩했다.
영국 런던에서 북동쪽으로 50㎞가량 떨어진 에식스 지역의 ‘테스코 홈플러스(TESCO Home Plus)’에 가면 낯익은 광경을 볼 수 있다. 건물 입구에는 쇼핑 카트가 겹겹이 놓여 있고, 무빙워크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면 매장이 나타난다. 매장의 물건들도 어른 키 정도면 손이 닿을 수 있도록 진열돼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너무 당연한 모습인 이 할인점은 정작 영국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우선 영국에는 그 동안 ‘홈플러스’가 없었다. 그냥 테스코가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영국의 할인점들은 대부분 1층짜리 건물이어서 무빙워크가 없고, 매장의 물건들은 천장에 닿을 듯 높이 쌓여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런 형태의 할인점이 테스코의 본고장인 영국에 등장한 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에서 시스템 전체를 수입했기 때문이다. 매장 구조, 상품 진열 방식까지 모두 한국식이다.

8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적 유통업체인 영국 테스코가 설립한 지 불과 8년밖에 안 된 한국 홈플러스의 브랜드부터 운영 노하우까지 몽땅 들여온 것이다.

홈플러스는 1999년 5월 삼성과 영국 최대 유통회사인 테스코가 함께 투자한 조인트 벤처로 태어난 유통회사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은 ‘삼성 계열사’로 잘못 알고 있다.

하지만 이승한 사장은 한술 더 떠 “삼성테스코는 삼성계열사가 아닐 뿐 아니라 본사도 없다”고 말한다. 영국 테스코와 삼성은 투자자일 뿐이고 삼성테스코는 별개 회사라는 것이다.

이 사장은 삼성테스코가 창립될 당시 영국의 투자자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홈플러스를 다국적기업의 브런치로 본다면 브런치 수준밖에 성장하지 못한다. 따라서 우리 회사는 법적으로도 완전히 독립 회사인 만큼 실질적으로 독립회사로 간주한다면 한국에서 100대 기업, 10대 기업까지 갈 수 있다.”

실제로 이승한 사장은 기업의 경영 방침에서부터 인사권·예산 등에 대한 모든 경영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한다. 또 삼성테스코는 세계적 브랜드를 업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홈플러스라는 독자 브랜드를 개발해 성공을 거둔 보기 드문 경우다. 이 때문에 영국 테스코에서는 삼성테스코를 “프로세스가 완전히 거꾸로 돼 있는 별종”이라고 부른다.

이 사장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신봉자다. 경영 원칙이나 시스템 등은 철저히 글로벌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도 그는 삼성 테스코에 영국 테스코의 경영 방식을 들여오는 대신 독자적 경영 방식을 만들어냈다.

“아무리 글로벌 스탠더드가 훌륭해도 점포 형태나 상품 구성, 마케팅 등은 로컬문화와 시장과 고객을 이해하지 않으면 구성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이런 부분은 철저하게 로컬 쪽을 접목하는 의미에서 글로벌과 로컬라이즈를 합쳐 ‘글로컬’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직 내부에서도 한국 실정에 꼭 필요한 제도는 과감하게 글로벌을 버렸습니다.

▶1 개점 시간에 맞춰 인사를 하고 있는 홈플러스 직원들.
2 매장에서 한 직원이 고객을 안내하고 있다.
3 홈플러스 직원들이 모여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예컨대 다국적기업에는 회의비라는 항목이 없는데, 저희는 공식적으로 회의비를 책정해 직원들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영국에서 파견 나온 임원 2명을 위해 우리가 영어로 회의하기보다 통역을 붙여 한국어로 회의를 하는데, 직원들을 배려하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측면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현지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운영한 덕에 이 사장은 전 세계 테스코 현지법인 중 유일하게 영국인이 아닌 현지인 경영자로 남아있다.

전세계 테스코 법인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만 ‘예외’가 인정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삼성테스코는 출범 이듬해인 2000년 8월 첫 점포인 안산점을 내면서 홈플러스라는 브랜드를 내걸었다. 그런데 첫해부터 ‘대박’이 터졌다.

인근 경쟁업체의 2배에 달하는 매출을 올린 것. 설립 3년째인 2001년에는 1조3,000억 원의 매출을 올려 할인점 사상 최단기간에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이로 인해 그는 ‘1조 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국 테스코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합작 첫해부터 이런 실적을 낼 수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결국 2002년 영국 테스코 직원들이 대거 몰려오기 시작했다. 한국에 수시로 찾아와 상품 구성과 진열 방식, 무빙워크의 위치, 층간 높이, 건물 디자인 등 운영 정보를 세세하게 파악해 갔다.

▶(좌) 홈플러스 바자에 참석한 이승한 사장.
(우)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한 홈플러스 데이.


테스코는 한국 홈플러스의 성공 비결이 한국형 매장 구조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들은 복층 구조와 지하 주차장, 백화점식 상품 진열 등에 주목했다. 기존 테스코 경영진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한 수 배운 테스코의 신설 매장은 대부분 복층 구조를 채택하고 무빙워크를 설치했다. 영국에서는 지하 주차장이 별로 없지만, 맨체스터를 포함한 일부 매장은 한국처럼 지하 주차장도 만들었다. 급기야 테스코는 2005년 10월부터 식품을 제외한 전문매장 7개를 열면서 브랜드를 모두 ‘테스코 홈플러스’로 쓰기에 이르렀다.

테스코의 역 벤치마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전 세계 테스코 매장에서 사용하는 상품관리 시스템 등 정보기술(IT) 시스템을 아예 한국의 홈플러스에 맡겨 개발했다.

이승한 삼성테스코 홈플러스 사장이 테스코그룹 회장 테리 경에게 IT 시스템 개발을 맡겠다고 제안했고, 테리 경은 이를 선뜻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삼성테스코는 2002년부터 1년 반 동안 국내 IT 전문가 70여 명을 보내 IT 인프라 업그레이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한국 기술자들은 지금은 터키·중국·일본·미국 등 테스코 진출국으로 나가 유통 시스템 구축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테스코의 IT가 테스코그룹의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승한 사장은 법인 설립 3년 만에 1조3,000억 원의 매출을 달성, ‘1조 원의 사나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삼성테스코가 처음 회사를 설립할 당시 국내 할인점시장은 이미 11개 회사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레드오션이었다. 그래서 삼성테스코의 출범에 관해 유통업계는 물론 재계 전체에 회의적 시각이 퍼져 있었다. 이 사장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기존 할인점과 똑같이 위치를 잡는다면 아류밖에 안 되고, 도저히 게임에서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국내외 할인점을 벤치마킹해 보니 고객들은 원스톱 쇼핑뿐만 아니라 원스톱 생활 서비스까지 원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그래서 1층에 문화센터·어린이놀이터·푸드코트·미장원·클리닉 등 생활편의 서비스 공간을 넣은 것입니다.

지금은 이런 개념이 당연시되지만 당시만 해도 원스톱 쇼핑과 생활 서비스를 묶은 형태의 할인점은 없었습니다. 타 경쟁사에는 없는 가치를 창출했기 때문에 레드오션이 블루오션으로 바뀐 거죠.”

최근 이 사장은 서울 잠실에 새로운 매장을 개설하면서 ‘3세대 할인점’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와 다시 한번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세대 할인점인 ‘가치점’에 이어 또 한번 전 세계 할인점업계의 고정관념을 깨는 중이다.

“2세대 할인점인 가치점도 세계 최초였습니다. 가치점을 내놓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가치점을 선보인 2000년 초에는 지금보다 할인점 업체가 더 많지 않았습니까? 10여 업체가 경쟁하는 시장에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성공하려면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야겠다고 판단하고 할인점에 클리닉·은행·자동차정비소·푸드코트·문화센터 등을 줄줄이 붙여 놓은 거지요. 처음에는 ‘저것이 무슨 할인점이야’ 하던 경쟁사들도 5년이 지나는 동안 하나 둘 모두 따라오더군요.”

▶미술관을 연상케 하는 홈플러스 부천 상동점.

하지만 3세대 할인점은 한 단계 더 나아가야만 했다. 더구나 잠실이라는 지역의 특성을 감안하면 어지간한 아이디어로는 상권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잠실점을 준비하면서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다고 한다.

“잠실점을 준비하면서 경영환경을 점검해 보니 한마디로 사면초가였습니다. 잠실이 어떤 곳입니까? 롯데의 아성 아닙니까? 고민을 거듭하던 중 이순신 장군을 떠올렸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23전23승을 기록했습니다. 비결이 무엇이냐 하면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지 않기 위해 지형을 연구하고 다양한 전략을 세웠죠. 우리도 그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지지 않을 것인가를 고민하다 얻은 해답이 바로 3세대 할인점입니다. 1세대 할인점이 쇼핑만 하는 곳이었다면 2세대 할인점인 가치점은 원스톱 생활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3세대 할인점은 거기에 최근의 트렌드인 웰빙과 감성, 문화를 담았습니다. 예를 들어 할인점 안에 베이커리 카페와 커피 전문점을 열면서 테라스를 만들고 파라솔을 설치했습니다.

▶홈플러스는 할인점에 ‘문화센터’, ‘고객가치 창조관’ 등을 처음 도입해 원스톱 쇼핑 공간이던 할인점의 개념을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 시켰다.


한 층은 아예 갤러리로 만들었는가 하면 100석 규모의 와인 바도 있습니다. 할인점에서 저렴한 가격에 와인을 사 가지고 올라와 소액의 좌석비만 내고 앉아 근사하게 와인을 마실 수 있게 했지요. 헬스클럽·사우나·골프연습장도 한편에 들어와 있고요. 이렇게 만들어 놓고 나니 문을 연 지 두어 달 됐는데 벌써 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는 2세대 가치점이 그러했듯 3세대 할인점도 곧 업계 표준이 될 것으로 믿는다.

“경쟁사들이 따라 해도 상관 없습니다. 이 같은 시도가 한국 유통업계 발전에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만은 분명하니,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삼성테스코 사장으로 온 1999년 당시만 해도 한국은 유통 후진국으로 불렸습니다. 심지어 동남아 국가들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요.

지금은 아닙니다. 유통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게다가 가치점 덕분에 삼성테스코는 테스코 그룹뿐 아니라 하버드대에서 사례발표도 했습니다. 3세대 할인점으로도 비슷한 성과를 거둬 한국 유통의 힘을 전 세계에 더욱 알리고 싶습니다.”

▶이승한 사장은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 미국 하버드대에서 ‘창조경영’에 관한 특강을 했다.

이 사장은 미국 하버드 대학과 인연이 깊다. 영남대를 나와 한양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하버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 그가 주창한 ‘예술경영론’ 덕분이다.

그는 2003년과 2005년 예술경영론과 홈플러스의 성공 비결을 주제로 하버드 대학에서 두 차례 특강했다. 2003년 특강에서 그에게 감명받은 하버드 대학 이사진과 교수들이 학생들에게도 ‘예술경영론’을 들려달라고 해서 한 차례 더 특강이 이뤄졌다.

2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05년 특강에서 그는 예술경영·헥사곤경영·신바레이션 문화 등 자신이 개발한 독특한 경영이론과 홈플러스가 월마트·까르푸 등 세계적 할인점을 제치고 한국시장에서 맹활약하게 된 비결 등을 강의했다.

이 사장은 2004년부터 아시아계 최초로 하버드 대학 치과대 운영이사회 이사로 활동 중이다. 하버드 대학 치과대에는 이 사장의 사위가 교수로 재직 중이고, 딸은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2007년 10월 하버드 대학 28대 총장인 드류 길핀 파우스트 총장 취임식에도 초청받았다. 이 행사는 미국 각계 VIP들이 참석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삼성테스코의 올해 매출은 6조 원대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을 제외한 세계 테스코그룹 매출의 3분의 1에 이른다.

이승한 사장은 “한국식 경영과 운영 효율성을 인정받은 결과”라며 “이제는 한국이 세계에 선진 유통 기법을 가르쳐 주는 시대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위대한 리더는 숫자를 남기기 보다 문화와 시스템을 남긴다”고 덧붙였다.

이승한 사장의 ‘예술경영론’& ‘버스론’
“경영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

이승한 사장은 경영을 ‘예술’과 ‘버스’에 비유하고는 한다. 2005년 하버드 대학 강연에서 선보인 예술경영론은 예술가들이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혼과 열정을 불사르듯 경영 역시 직원들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 혼과 열정을 불사른다면 예술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경영이론이다.

그는 매장을 돌아보다 예술경영에 눈을 떴다. 어느 날 생선코너를 돌아보는데 갑자기 생선코너가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캔버스로 보였다고 한다. 밑에 얼음을 깔고 생선을 진열해 놓은 모습이 어떤 매장은 잔잔한 호수처럼 보이는가 하면 어떤 매장은 파도 치는 물결처럼 보였다는 것.

이런 방식으로 각 점포의 직원들이 자신이 맡은 작업에 혼과 마음과 열정을 가지고 임한다면 지치지도 않을 뿐더러, 고객에게도 정성이 담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예술경영론의 요체다. 그는 요즘도 임직원에게 “경영은 한 폭의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는 말을 자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 사장은 ‘병풍경영’이라는 말도 한다. 삼성테스코는 설립 14년째인 2012년까지 비전을 만들어 놓고 14폭짜리 병풍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말이다. 그는 이미 2012년까지 신년사 키워드를 만들어 놓고, 매년 한 폭의 그림을 그려가는 심정으로 하나씩 꺼내 드는 중이라고 한다.

‘버스론’은 리더십에 관련한 이야기다. 회사의 발전 단계를 3대의 버스에 비유한 것으로, 첫 번째 버스는 좋은 회사가 되는 것, 두 번째는 위대한 회사가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는 위대한 회사를 지속적으로 영속시키는 것이다.

그는 삼성테스코는 두 번째 버스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지금까지는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발휘했다면, 이제는 뒤에서 보조해 주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그는 “두 번째 버스에 타지 않아야 할 사람, 타야 할 사람을 구분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Posted by Takumi

2008/01/13 10:06 2008/01/13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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