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간부로 지내다 귀향
2년 만에 주민소득 3배로
서른살 장원츙 스타덤에
"앞으로 마을 소득을 매년 50%씩 높여 중국 최고의 부자 마을(村)로 만들겠습니다."
2년 만에 주민소득 3배로
서른살 장원츙 스타덤에
- ▲ 중국 최초의 해외유학파 MBA 출신 촌장인 장원츙 원저우시 샤오컹춘 촌장(미소 짓는 젊은이)이 촌민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가 2006년 촌장이 된 뒤 2년여 만에 샤오컹촌은 주민소득이 3배로 늘어났다. /바이두 닷컴
올해 개혁개방 시작 30주년을 맞은 중국이 한 시골 촌장(村長)의 성공 스토리에 열광하고 있다. 주인공은 중국 동남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는 샤오컹(小坑)촌의 촌장 장원츙(章文瓊·30). 장 촌장은 덩샤오핑(鄧小平)이 중국의 개혁개방을 선언하던 1978년에 출생했으니 '개혁개방둥이'다.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 아버지를 따라 7살 때 샤오컹촌을 떠난 그는 1999년 영국 런던으로 건너가 5년간 접시닦이와 빵가게 점원으로 학비를 벌며 고학(苦學), 런던경영대학원(LGSM)에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땄다.
2004년 귀국해 2년간 상하이(上海)와 톈진(天津)의 기업에서 고위간부로 일하던 그가 낙향을 결심한 것은 '구이저우(貴州)성의 한 농촌이 그간 500여명의 대학생을 배출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빈곤하기 짝이 없다'는 짤막한 신문기사 때문이었다.
그는 전 재산 100만 위안(약 2억1000만원)을 몽땅 고향에 기부한 뒤 2006년 7월 고향에 빈 집 한 칸을 얻어 농촌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엔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촌장은 "한번 믿어보겠네"라며 1년여 남은 임기를 포기하고 장씨를 새 촌장 후보로 밀었고, 촌민들은 90%가 넘는 압도적인 찬성표로 장씨를 선출했다. 중국 최초의 해외유학파 MBA 출신 촌장이 탄생한 것이다
전기나 전화는 물론 마을 진입로도 제대로 없던 주민 528명의 샤오컹촌은 최근 2년 새 '천지개벽'을 했다. 장 촌장은 우선 정부관리들을 설득해 마을로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였던 구불구불한 오솔길 5㎞를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신작로로 바꿨고, 전봇대도 곳곳에 세웠다. TV도 볼 수 없었던 주민들이 순식간에 인터넷으로 세상 소식을 접하게 됐다.
장 촌장은 원저우 시내의 기업들과 연계해 생산은 촌에서 맡고 유통·판매는 기업들이 맡는 분업체계를 구축, 밭에서 썩어 문드러지던 차(茶)와 무공해 작물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바꿔 놓았다. 또 사슴과 토종 닭 사육에 집단사육 시스템을 도입, 과거보다 5배 높은 판매 수입을 올릴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힘입어 마을 주민의 1인당 평균 소득은 2년여 만에 3배로 증가, 올해 6000위안을 훌쩍 넘겼다.
소문이 나자 중국 중앙정부는 올해부터 샤오컹촌을 대학생들의 교육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매년 대학생 수천 명을 이곳에 견학시킨 뒤 전국 농촌으로 파견, 농촌 개혁을 이끌게 할 계획이다. 장원츙은 최근 2년 임기의 촌장에 재선됐다.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