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무너진 '차이나 드림'

올림픽이 열린 지난달 베이징 길거리에서 본 한국 차는 아반떼(중국명 엘란트라) 택시가 대부분이었다. 일반 승용차 중에도 가끔 쏘나타나 아반떼가 있었지만, 그 수는 일본 차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중·대형차는 혼다 어코드와 도요타 캠리, 닛산 티아나 등 일본차 천지였다. 현대차가 3년 전 캠리와 어코드를 겨냥해 출시한 NF쏘나타(배기량 2.4L)는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다.

2002년 베이징자동차와 합작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현대차는 2005~2006년 2년 연속 중국 시장 점유율 4위를 기록하며 '현대속도(現代速度)'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불과 3년 만에 중국 시장의 메이저 업체로 떠오른 데 대한 찬사였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속 내리막길이다. 중국 자동차 판매는 지난해 22%나 증가했지만, 현대차는 반대로 판매가 20% 줄었다. 시장점유율도 2006년 6.9%에서 4.6%로 곤두박질쳤다. 중국형 아반떼 '위에둥(悅動)'의 출시 효과를 봤다는 올 상반기에도 4.5%에 그치고 있다.

반면 시장 진출이 늦었던 도요타는 중형 캠리와 준준형 코롤라를 앞세워 차곡차곡 시장을 넓히고 있다. 2002년 0.1%에 불과했던 시장 점유율은 올 상반기 10.5%를 기록했다. 도요타, 혼다 등을 합친 일본차 전체의 올 상반기 중국 시장 점유율은 29.9%(80만대 판매)로 터줏대감인 독일차(20.8%)를 훨씬 앞섰다.

후발 주자인 일본차의 약진은 철저한 현지화 전략과 체계적인 마케팅 덕분이었다. 일본 업체들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차종인 캠리와 어코드 등을 내세워 먼저 중·대형차 시장에서 브랜드 우위를 점한 뒤, 다양한 중·소형 신차를 파상적으로 출시하며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신차는 디자인과 사양을 중국 소비자의 기호에 맞춰 현지화했고, 일본차 특유의 세심한 애프터서비스로 중국 소비자의 마음을 사고 있다.

현대차가 일본차의 공세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진 것은 판단 착오와 오만 때문이었다. 현대차는 지난해 일본·독일차가 중국 시장 패권을 놓고 치열한 가격 경쟁을 펼칠 때 팔짱을 끼고 지켜봤다. '밑지고 안 팔겠다'는 생각이었지만, 가격 경쟁력이 핵심인 현대차가 스스로 경쟁력 저하를 방치한 셈이 됐다. 현지화 모델도 지난 4월에 나온 '위에둥'이 유일하다.

쏘나타 판매 전략도 오만이 빚은 실패작이었다. 2005년 NF쏘나타를 '위샹(御翔)'이라는 이름으로 내놓으면서 차량 이름에서 쏘나타를 빼고, 가격을 독일·일본차에 근접한 수준으로 올렸다. 단기간에 시장 4위에 오른 자신감에서 나온 전략이었지만, 중국 소비자는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위샹에 독일·일본차 값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다. 위샹의 올해 월 평균 판매 대수는 760대 수준으로, 월 1만대를 넘는 어코드, 캠리와 비교조차 힘든 상황이다. 중국시장 실패 충격은 현대차에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 900만대로 미국(1600만대)에 이어 세계 2위의 자동차 시장이다. 미국에 이어 중국시장에서도 일본차에 밀리면 현대차의 글로벌 톱 브랜드 희망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과 달리 중국에서는 먼저 앞서가다 역전을 당한 형국이어서 충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현대차 노조는 올해도 변함없는 파업으로 회사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적진을 앞에 두고 회사와 노조가 앞다퉈 자충수(自充手)를 두고 있는 꼴이다. 그 와중에 현대차의 글로벌 선전을 기대해온 국민의 꿈도 무너지고 있다.


Posted by Takumi

2008/09/17 09:17 2008/09/1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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