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즈민의 베이징 레터
韓·中 양국팀 계속 강해지길 경쟁있어 베이징대회 더욱 풍성

전 중국 탁구 국가대표

중국의 혼이 숨쉬는 고도(古都·옛 도시) 베이징. 이곳은 올림픽이 다가오면서 날마다 새롭게 변해간다. 베이징의 상징 자금성(紫禁城)을 기준으로 정북 방향을 보면 '올림픽 그린'이 태어나고 있다. 새 올림픽 경기장들은 비 온 뒤의 죽순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간다.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지평선 위에서 한데 어울리는 모습은 장관이다. 베이징 거리를 거닐면서 나는 2008년 올림픽이 정말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한다.

지난 연말 베이징에서는 국제탁구연맹이 주최한 연말 총결산 대회들이 열기를 뿜고 있었다. 어떻게든 대회장에 가고 싶었지만 표를 구할 수가 없었다. 표 한 장이 이렇게 귀하다는 사실에서 올림픽이 코앞이라는 점, 그리고 탁구가 중국인들에게 크게 사랑받는 스포츠라는 점을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중 양국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보며 수많은 감정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돌이켜 보면 20년 전 내가 서울올림픽에 참가했을 당시의 여건은 지금처럼 좋지 못했다. 지금 선수들은 최신 훈련시설 속에서 체계적인 지원, 좋은 생활여건을 제공받으며 과학적으로 훈련한다. 후배들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광고에도 출연해 부와 명예를 거머쥘 수 있다.

20년 전엔 달랐다. 그때 우리는 3종1대(三從一大)라는 기준에 따라 운동했다. 높은 훈련 난이도를 소화할 것, 엄격한 평가 기준을 받아들일 것, 그리고 실전 우선의 원칙을 따를 것. 이것이 삼종이었다. 그리고 일대란 엄청난 훈련량을 의미했다. 매일의 훈련은 거의 기계처럼 반복됐다. 하루 24시간 중 잠자는 시간을 빼면 모두 훈련이었다. 우리는 기본기 강화를 위해 같은 동작을 수없이 반복 연습했다.

  • ▲ 지난 연말 베이징 사무실의 자오즈민. 그녀는“아이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탁구가 올림픽에 처음 정식으로 채택된 대회였다. 우리들은 대회를 몹시 고대하고 있었다. 세계 최고 실력을 갖고 있는 중국에는 금메달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금메달을 따고 싶은 큰 욕망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금메달을 위해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노력을 했음에도, 국가의 이익과 중국 탁구팀 단체의 명예를 위해 개인의 이익과 명예를 포기하고 복종해야 했다. 당시 우리에겐 "팀을 위하여, 국가를 위하여 싸운다. 국가와 단체의 이익은 무엇보다도 높다"는 슬로건이 있었고, 이런 '희생볼'로 인해 결국 나는 서울올림픽 챔피언이 되지 못했다. 올림픽 챔피언 자리는 나의 가장 높고 큰 목표였지만 평생의 한(恨)이 되고 말았다.

이제 20년이 지났다. 꿈에도 그렸던 올림픽 챔피언은 놓쳤지만 지금은 남편 안재형씨와 행복한 가정을 꾸렸고 개인적으론 사업을 하며 큰 위안을 받았다. 지금 나는 중국과 한국 사이를 바쁘게 뛰어다닌다. 하지만 바쁜 중에서도 양국의 탁구는 잊지 못한다.

베이징 올림픽을 생각하면 벌써 가슴이 떨린다. 때가 되면 나는 반드시 현장을 찾아 양국 선수를 위해 함성을 올리며 응원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분들은 꼭 물을 것이다. "만일 올림픽에서 한국팀과 중국팀이 만나면 누구를 응원할 것이냐"고. 곤란한 질문이다. 중국은 나의 모국이요, 한국은 남편의 나라. 어느 팀이 이겼으면 하는 것보다는 두 나라 선수들이 뛰어난 경기력으로 결승에서 만나 멋진 경기를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희망컨대 한국팀과 중국팀이 계속 강해지기를 바란다. 분명히 경쟁이 있기에 스포츠는 더욱 더 흥미로워지며, 베이징 올림픽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다.


◆자오즈민은

89년 안재형과 결혼… 직원 120명 둔 사업가 변신 


1989년 중국 탁구대표팀 최고의 미녀스타 자오즈민(焦志敏·당시 26살)과 한국 탁구 대표팀 안재형이 발표한 결혼 소식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빅 뉴스였다. 86 아시안게임 단식 금메달, 88 올림픽 복식 은메달과 단식 동메달을 따낸 그녀는 결혼 이후 완전히 탁구계를 떠났으며 사업가로 변신해 대성공했다. 지난 연말 베이징 시내 '전천(全天)통신'사에서 만난 자오즈민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녀는 1시간 만나는 동안 20~30장의 서류에 사인을 했고 10여 통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가 대표이사로 있는 전천통신은 연 매출 55억원에 달하는 통신 부가서비스 회사. 2004년부터 사업을 시작한 그녀는 4년 만에 중국 4대 통신사와 모두 서비스 공급 계약을 맺는 성과를 올렸다. 지금은 직원 수 120명의 중견기업이다.

남편인 안재형씨는 대한항공 감독직을 사임하고 골프선수 지망생인 고교생 아들과 함께 미 플로리다에 머물고 있다.

Posted by Takumi

2008/01/08 12:06 2008/01/08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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