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리더들은 아침에 바쁘다

한국 리더들은 아침에 바쁘다

조찬 모임, 매일 8~10건 열려… 최신정보 얻을 수 있는 ‘새벽 지식시장’


    3일 오전 7시 서울 소공동 프라자호텔. 아직 새벽 어스름이 깔려 있는 호텔 입구로 고급 세단들이 줄지어 들어온다.

    윤영석 두산중공업 부회장, 이희범 한국무역협회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필리프 티에보 주한 프랑스 대사…. 이 밖에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 인사들과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차에서 내린다. 이런 거물들이 이른 아침부터 호텔로 모인 까닭은 뭘까.

    이들의 행선지는 호텔 22층, 모 경제연구소가 주최하는 조찬 강연회장이다. 세계적 경제평론가인 데이비드 헤일(David Hale) 미국 해일어드바이저사 회장이 강사로 나섰다. ‘동아시아 경제, 어디로 갈 것인가?’가 주제.

    40여분의 강연 동안 강연회장은 대학 강의실처럼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CEO들이 강연 한마디 한마디를 노트에 받아 적는 광경은 다른 곳에선 도저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강연이 끝나자 영어로 추가 질문과 토론까지 이어졌다.

    ◆조찬 행사 연간 3000여건 달해

    요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여론주도층)들의 일정표에는 이런 조찬회가 필수 항목이다. 각종 경제연구소, 경영대학원, 기업 단체, 정부기관, 언론사 등이 주최하는 조찬 모임부터 ‘이너 서클(inner circle·내부 정보 공유 모임)’들의 비공개 모임에 이르기까지 연간 3000여 건의 조찬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조찬 모임은 특히 최근 들어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김현숙 과장은 “매일 1~2건씩, 지난해 총 480여건의 조찬 행사를 치렀다”고 말했다. 주제는 보통 경제·경영 분야의 최신 트렌드. 국내외 석학이나 유명 인사들이 강사로 나선다. 황우진 푸르덴셜보험 사장은 “평소에는 업무에 바빠 자기 계발할 틈이 없는데, 조찬회에서 생생한 정보와 자극을 얻는다”고 말했다.

    때로는 정부의 정책 담당자와 민간의 이해 관계자가 만나 현안 이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기도 한다. KT의 A 임원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한두 마디씩 주고받는 이야기들이 나중에 정부 정책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아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상인들이 장사할 물건을 사러 새벽 장을 보러 나가듯, 조찬회는 오피니언 리더들의 새벽 지식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인 근면성과 어울리면서 붐 일어

    조찬 모임은 한국이 낳은 독특한 기업 문화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롯데호텔 연회팀 이차근 과장은 “한때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이 유행하더니 조찬 행사도 크게 늘더라”며 “한국의 조찬 문화는 근면성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상당한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 단체나 기업들은 주로 오찬이나 만찬 행사를 여는 편”이라고 덧붙였다.

    주한일본기업인들의 모임인 서울재팬클럽의 한 회원은 “일본에서도 조찬 모임이 많이 열리는 편이지만, 한국만큼은 아니다”라며 “새벽부터 결연한 모습으로 조찬회에 나가는 한국 경영자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세계경제연구소 초청으로 우리나라를 방한해 조찬 강연을 한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은 “한국이 왜 잘 나가는지 알겠다. 외국에도 이런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며 극찬했다.

    ◆경제계의 조찬회 마니아들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조찬회 경력이 10여 년이 넘는다. 요즘도 한 달에 3~4번씩은 꼭 조찬 행사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나금융지주 관계자는 “김 회장은 조찬회에서 얻은 창의적 아이디어를 직원들에게 전파하고, 실제 업무에도 적용하는 등 지식 경영의 전도사”라고 말했다.

    KTF 조영주 사장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조찬 특강인 ‘메디치21’에 열성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새로운 분야의 지식과 트렌드를 통해 경영에 대한 영감과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휴먼 네트워크가 확대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경제연구소 박일붕 부장은 “최근에는 10명 중 1~2명꼴로 30~40대 오피니언 리더들의 참여도 눈에 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호텔측에서는 조찬회가 썩 달갑지만은 않다고 한다. A호텔 연회팀장은 “1인당 2만~3만원짜리 조찬회 때문에 연회 담당 직원이 총출동하면 오히려 손해지만, 참가자들이 모두 VIP들이라 소홀히 할 수 없다”고 말했다.


  • Posted by Takumi

    2007/05/04 09:02 2007/05/04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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