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 문화유산해설사 김창연씨
외국인 맞춰 포크송 부르며 다가가 미군부대 하우스보이 거치며 영어 배워
경기도 교육청 영어담당 장학관 출신… 해설사 합창단 공연하는 게 꿈
“Hi, there! (안녕하세요!)”
27일 오전 수원 화성(華城) 연무대(鍊武臺) 앞. 금발에 푸른 눈의 청년을 발견한 만 68세의 노인이 영어로 소리쳤다. 청년이 발걸음을 멈추자 그는 곧이어 다음 질문을 던졌다. “Where are you from? May I ask you?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을 구경하려고 스웨덴에서 왔다는 스벤스 잔씨는 유창한 영어로 이어지는 화성에 대한 그의 설명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화성 문화유산 해설사 김창연(68·수원시 영통구 매탄1동)씨의 명함은 한글, 영어, 한자의 3개 언어로 쓰여 있다. ‘金昌淵(김창연)’이라는 글자 아래에 쓰여 있는 이름은 ‘Kim Paul(Chang-yeon)’. 70을 바라보는 노인답지 않게 글로벌하다. 지난 2001년 자원봉사로 화성 해설을 시작해 2005년 도지사로부터 정식 화성 문화유산 해설사로 위촉받았다. 주로 영어 안내를 담당하는 김씨는 전직 영어 교사 출신. 2001년 정년 퇴임한 그는 경기도교육청 영어 담당 장학관으로 근무하기도 했고, 안산 대부종고와 안성고 교장을 지냈다.
- ▲ 영어 교사 출신인 화성 문화유산해설사 김창연씨는“나의 자산인 영어를 썩히기 싫어 은퇴 후에도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성 문화유산 해설사로 일하시게 돼서 좋은 점이 뭔가요?”라고 묻자 “Brush up on my English! (영어를 한층 더 연마할 수 있게 됐죠!)”라고 답하는 이 유쾌한 노인은 매주 월요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화성 연무대 종합안내소에서 근무한다. 뜨거운 태양을 막기 위한 챙 모자와 항상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세계 각국 민요 악보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외국인 관광객을 안내할 때면 국적을 물어본 후 출신 국가의 포크송이나 민요를 즉석에서 불러준다. “캐나다인 관광객들에게는 ‘로키산에 봄이 오면(Springtime In The Rockies)’을, 미국 같은 경우는 테네시주 출신이면 패티 페이지의 ‘테네시 왈츠(Tennessee Waltz)’를, 앨라배마 출신이면 ‘오! 수재너(Oh, Susanna)’ 등을 불러주곤 해요. 자기 나라 노래를 한국인이 불러주니 아주 반응이 좋아요.”
설명은 짧고 재미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칙. 37년 교직 생활에서 터득한 노하우다. 짧게 다녀가는 관광객에게는 30분 동안 ‘집중 강의’를 해 주고, 2시간이 넘도록 성곽을 둘러보는 관광객들에게는 중간중간 쉬어가며 설명한다. 관광객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순간순간 질문을 던져 그들 스스로 답하도록 배려한다.
- ▲ 화성문화유산해설사 김창연씨가 27일 오전 화성을 찾은 스웨덴 관광객 스벤스 잔씨에게‘화성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배답지 않게 일본식 영어의 영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정확한 발음의 영어를 구사한다는 것이 김씨의 강점. 그러나 그 이면에는 한때 서툰 한국말 때문에 친구들로부터 놀림 받고 ‘왕따’까지 당했던 슬픈 과거가 숨어있다. 그의 고향은 중국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치치하얼(齊齊哈爾). 일제 때 먹고 살 길을 찾아 중국으로 이주했던 그의 가족은 광복을 맞은 1945년 늦가을, 걸어서 서울로 돌아왔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그는 한국말이 서툴러 도무지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없었다고 했다. “왕따를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 설움을 모릅니다. 그 당시 아이들이 저를 ‘되놈’이라고 불렀어요. ‘창연’이라는 이름이랑 발음이 비슷하다며 ‘차이나(China)’라고 부르는 애들도 있었어요.” 그에 대한 반발로 오히려 외국어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생계를 위해 당시 원주에 주둔했던 미군부대 ‘하우스 보이’로 들어간 그는 미군들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영어를 익혔다. “당시 저를 데리고 있었던 장교가 참 친절했어요. 일일이 발음도 교정해 주고, 어법도 고쳐주었죠. 덕분에 미군 부대 안에 있는 중·고등학교를 나왔어요. 그게 전화위복이 돼 영어라면 남들에게 뒤지지 않게 되었죠.”
화성 문화유산 해설사를 시작한 것도 ‘영어’라는 자원을 썩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 해설사로 일하는 것 외에도 수원시내의 한 복지관에서 6년째 주부들을 위한 생활영어를 강의하고 있다는 그의 꿈은 화성에서 활동중인 60여 명의 문화유산 해설사들을 모아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이다. “미군 부대 하우스 보이 시절, 노래도 많이 배웠지요. 군 복무 중에는 트럼본을 불며 군악대에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영어와 함께 노래도 삶을 풍요롭게 해 줍니다. 제 정년퇴임식, 어떻게 치른 줄 아세요? 학생들의 반주 아래 안드레아 보첼리의 ‘Time To Say Goodbye(헤어져야 할 시간)’를 직접 불렀어요.(웃음)”
Posted by Takum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