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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명품 서비스에 반한 베트남 부자들
Date : 2008/01/13 10:03

▶호치민 예메디컬 센터


베트남은 주식과 부동산에 돈이 몰리며 신흥 갑부들도 속출하고 있다. 두둑해진 지갑만큼이나 이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베트남에 진출한 예치과·뚜레주르·싸이월드 관계자들은 “여기서도 한국 못지않은 시설과 서비스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강남 예치과와 비슷한 수준의 진료비를 받고 있습니다. 임플란트는 치아 하나에 250만원부터 시작합니다.”

두 명의 한국인 의사와 5명의 현지 간호사들이 일하고 있는 호치민 예메디컬 센터는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병원 중 유일하게 성공한 병원으로 손꼽힌다.

비슷한 시기 베트남에 진출했던 한국 대형 병원 두 곳이 현재 문을 닫은 것만 봐도 이곳을 만만하게 봤다간 큰 코 다친다. 치과와 내과로 구성된 예메디컬 센터를 찾는 고객은 하루 50명 내외. 노숙희 원장은 “이 중 10명 정도가 베트남의 최상류층”이라고 귀띔했다.

임플란트 한 개를 하는데 250만원. 베트남 1인당 GDP(700달러)의 세 배가 넘지만 예메디컬을 찾는 베트남 부자 고객들은 꾸준히 늘고 있다. 박현환 과장은 “철저하게 한국 수준의 고급화를 추구한 전략이 좋은 성과를 낳은 것 같다”고 입을 열었다.

호치민 시내에 있는 예메디컬 센터의 시설은 베트남 최고 수준이다. 박 과장은 “10억원을 들여 개점했다”며 “베트남 현지 병원은 물론 같은 규모의 다른 외국계 병원보다 훨씬 많은 초기 투자 비용을 들였다”고 설명했다.

예메디컬 센터는 설립 이후엔 한류 마케팅을 적극 활용했다. 박 과장은 “한국 의사들의 기술력을 내세우며 미용 부분이 세계적이란 점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며 “한류 스타 덕분에 한국의 이미지가 세련되고 깔끔한 점도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실제 예메디컬 센터에서 가장 매출이 높은 분야는 ‘미용을 위한 치아 교정’과 ‘피부 관리’ 분야다. 노 원장은 “성형외과·소아과·이비인후과·정형외과 등으로 분야를 넓혀 미용 성형 종합센터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호치민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노이 등으로도 뻗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12월 3일 월요일 저녁 호치민 시내의 하이바쫑 거리. 도로 양쪽엔 패션 전문 매장부터 휴대전화 액세서리점 등 트렌디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다. 이 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유독 세련된 젊은이들이 몰려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한국에서도 자주 만날 수 있는 곳, CJ푸드빌이 호치민 현지에서 운영하는 뚜레주르다.

스쿠터를 함께 탄 베트남 연인들이 뚜레주르 입구에 내리면 제복을 입은 젊은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해 스쿠터를 발레파킹 해준다. 스쿠터 열쇠를 넘기고 매장 입구에 들어서면 베트남 현지 점원들이 반가운 목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호치민 뚜레주르 1호점은 시내 명소로 자리 잡았다.


아직까지 사회주의가 뿌리깊게 남아 있는 베트남에선 쉽게 볼 수 없는 광경. 실제 베트남 현지 음식점들의 직원들은 대체로 ‘뻣뻣’하다. 남영현 호치민 뚜레주르 지점장은 “베트남 사람들은 원래 자존심이 셀 뿐만 아니라 서비스 마인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심지어 직원들이 고객과 동격이라고 생각할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남 지점장은 뚜레주르를 열면서 무엇보다 직원들의 교육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틈만 나면 직원들에게 고객이 오면 웃으면서 인사하고, 불편한 점이 없는지 신경 쓰라고 강조했다.

뚜레주르 호치민점이 입점해 있는 하이바쫑엔 뚜레주르 외에 베트남 현지 제과점 매출 1위를 달리고 있는 ‘킨두(kinh Do)’와 2위인 ‘둑팟(Duc Phat)’이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매장을 열기 위해 호치민 시내를 이 잡듯 뒤지며 다녔다는 남 팀장이 굳이 경쟁이 치열한 이들 사이에 120평 규모의 뚜레주르 1호점을 연 까닭은 무엇일까.

남 지점장은 “베트남 사람들에게 최고로 인정받는 것이 목표였기에 한국 교민이 살고 있는 곳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며 “최고의 제과점들이 곁에 있어야 뚜레주르가 더 빛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뚜레주르 베트남 1호점은 지난 6월 문을 연 지 반 년 만에 베트남 현지에서 가장 높은 매출을 올리는 제과점이 됐다.

남 지점장이 꼽는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과감한 초기 투자. 뚜레주르 역시 예메디컬 센터처럼 인테리어 등 초기 투자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남 지점장은 “기존 베트남 업체들에 비해 10배 이상 비용을 들였다”고 귀띔했다.

식단에 있어 현지화를 추진한 것도 주효했다. 식빵은 한국보다 소비가 적어 제품의 종류를 네 개로 줄였다. 단맛을 좋아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취향을 고려해 더 많은 시럽을 넣은 커피를 제공하고 있다. 연이어 2호점과 3호점을 준비하고 있는 남 지점장은 “앞으로도 베트남 최고의 제과점으로 자리를 굳힐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5월 베트남 현지에 시범서비스를 선보인 후 9월에 정식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는 싸이월드 역시 남다른 마케팅으로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싸이월드 베트남은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지 3개월도 안 돼 하루 가입자 수가 5,000명을 넘을 만큼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싸이월드 베트남의 장종범 부사장은 “베트남에서 대형 포털 사이트들도 이처럼 단기간에 가입자 수를 늘린사례는 드물다”며 “휴대전화의 선불카드로 ‘도토리’를 사는 가입자들도 최근엔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 부사장은 “이런 추세라면 내년 말쯤엔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애초 베트남 젊은 사람들은 기존 서비스와 전혀 다른 ‘싸이 서비스’에 경계심을 나타냈다. 가입자 증가세도 더뎠다. 지지부진했던 가입자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에서 볼 수 없었던 대대적인 이벤트를 벌이면서였다.

싸이월드 베트남은 10월 6일을 ‘싸이 데이’로 지정하며 호치민 대형 경기장을 통째로 빌렸다. 싸이월드 가입자들을 상대로 ‘싸이 스마일’을 뽑고, 인기 가수들을 불러 공연도 열었다. 그러자 공짜로 발행했던 티켓이 나중엔 비싼 암표로 유통됐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벤트가 끝난 후 가입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했다. 베트남 기업을 비롯해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의 제휴 문의도 쇄도하고 있다. 장 부사장은 “외국 문화가 밀려 들어오면서 젊은 사람들의 눈높이도 상당히 높아졌다”며 “세련된 이벤트를 통해 관심을 모은 게 주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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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ゆ ファンに感謝!告白後初の肉声
Date : 2008/01/10 10:13
左耳が聞こえなくなったと告白し、動向が注目されている歌手の浜崎あゆみ(29)が9日午前、CM撮影のため成田空港発の日航機でパリへ向かった。公の場に姿を見せたのは4日の告白以来、初めて。「頑張ってください」の呼び掛けに、ニッコリとほほ笑み「ありがとう」としっかり返答。自身の公式サイトではファンに向けて「私は歌う。多くを語るのではなく」と胸中を明かした。

 衝撃告白から5日。あゆをスポニチ本紙がキャッチした。午前11時、パリ行きの出発ゲートに、10数人のスタッフに囲まれながら現れた。

 濃いグレーのワンピースにブーツ姿。サングラスと首に巻かれた大判の白黒のマフラーが小さな顔を覆い、わずかに真っ白な肌がのぞく“完全防備”。左肩にバッグ、左手に革ジャン、「完全に機能していない」という左耳は、黒い帽子に包まれていた。

 取材エリアが規制されている関係で、浜崎の左側からしか質問できない状況。「ファンから激励の言葉が寄せられていますよ」と声を掛けると、「ファン」という言葉にピクリと反応したように「あっ!」と驚いたような声を漏らした。そして「ありがとうございます」としっかり返答。

 男性スタッフが「すみません!どいてください」と叫ぶなど物々しい雰囲気の中、左側からしっかりと言葉を聞き取れたことは、病状を心配するファンにとってはうれしいニュース。続けて「病状は?」などの質問には「すみません」と回答を避けた。最後に「頑張ってください」と声を掛けると、マフラーから真っ白な歯をのぞかせてニッコリとほほ笑み「ありがとう」と言って機内に乗り込んだ。

 渡航は、イメージキャラクターを務めるパナソニックのCM撮影のため。パリ到着後、イタリアへ入る予定だ。

 渡航前日の8日には、会員制のファンクラブサイトに現在の心境をつづった。テレビの報道番組や一般紙でも報じられるなど、予想以上の騒ぎになったことに「そろそろ私と(会員の)みんなだけで話ができるよう、みんなのメアド教えてもらおうかな。直接会って、顔と顔を合わせて、目を見て、みんなと話ができたらと思った」と、トップスターゆえの複雑な思いを明かしている。

 自分のありのままの思いを言葉で伝える難しさをあらためて認識したためか「だから私は歌うんだと思う。多くを語るのではなく。これまでも、これからも」と力強い決意を表明。どんな障害も乗り越え“生涯一歌手”を貫くことを誓い、4月からの10周年記念ツアーも予定通り行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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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평양을 건너며…
Category : SCRAP/people
Date : 2008/01/01 08:33

▲ 박진영 가수
오늘(31일) 미국 뉴욕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6주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다시 전쟁터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원더걸스의 ‘텔미’가 뜻밖의 큰 성공을 거뒀고, 6년 만에 다시 가수로 서서 내 나라 내 팬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 난 뉴욕으로 돌아가야 한다. 가수에서 다시 프로듀서로, 매니저로, 싸움꾼으로 돌아가야 한다. 뉴욕은 세계 음악의 중심지다. 모든 대형 음반사들의 본사가 있고, 내가 하는 흑인 힙합음악의 발원지일 뿐더러, 전 세계 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MTV 방송사 역시 이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명실공히 전 세계 음악인들의 전쟁터다. 이 사이에서 나는 아시아 음반사로는 유일하게 조그마한 4층 건물을 잡고 개업을 했다. 내가 미국에서 곡을 팔 수 있었으니 가수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지금 그 작은 건물에는 우리 동지 6명과 1년간의 운영자금, 그리고 미국 데뷔를 앞둔 신인들 3명이 날 기다리고 있다.

아직 미국에서 성공한 동양인 가수는 역사상 한 명도 없다. 그리고 올해 우리는 그 일에 도전한다. 그래서 내 피는 더 끓는다.

이번에 떠나는 내 마음은 4년 전 처음 미국으로 떠날 때와는 많이 다르다. 사실 그땐 자신이 없었다. 막연히 “한 번 도전해봐야지” 하며 철없이 떠났던 시절이었다. 후에 미련이 남을까 봐 안 될 걸 알면서도 해보는 도전이었다. 나보다 앞서 실패했던 쟁쟁한 일본과 중국의 음악인들의 모습을 보며 “나도 안 될 거야. 저 사람들도 안 됐는데”라는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내가 나를 못 믿으면, 세상도 마찬가지다. 회사 주주들마저 미국 진출에 반대해 사업 자금은커녕 집 구할 돈도 없어 아는 형 집에 얹혀 살았다. 주차장 남은 공간을 작업실로 쓰며 도전을 시작했다. 음반사 건물 로비의 안내원들에게 음료수를 돌리며 말 몇 마디 건네는 게 두렵기만 했던 그때, 그냥 한국에 돌아갈까 수없이 망설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 안내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당당히 사장실 방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꽤 먼 길을 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이젠 자신이 있다. 그 자신감은 다른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는 대한민국 국민의 근성과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미국에 가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이렇게 끈질긴 근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국민들뿐이라는 것이다. 우린 안 된다고 포기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린 언제나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내며 여기까지 왔다. 4년 전 미국 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아는 사람도, 돈도 없었다. 하지만 무시 당할수록 더 끓어 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밟힐수록 더 살아나는 무언가가 있었다. 실패할 때마다 바로 또 다른 방법을 찾았고 누군가가 나를 안 만나주면 그 사람 집 앞에 호텔방을 잡고 며칠이고 만나줄 때까지 기다렸다. 미국 사람들은 모두 나 같은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우리 아버지 세대도 중동 모래 바람을 맞으며 그렇게 하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우리들의 근성은 때로 부작용도 낳는다. 하지만 나는 ‘근성의 힘’을 믿는다. 그게 우리 국민들을 하나로 묶는 끈임을 믿는다. 세계에 퍼져 훌륭하게 자리잡고 있는 우리 동포들도, 태안 앞바다에서 기름띠를 걷어내는 자원봉사자들도, 작은 몸으로 큰 체격의 외국 선수들을 물리치고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운동 선수들도…. 모두 이 특유의 근성으로 그곳까지 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미국에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몸을 부딪쳐 싸우면서 깨달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참 끈질기구나. 특별하구나. 그래서 이 작은 나라가 세계 12위의 경제 대국이 된 거구나. 그리고 그 피가 나에게도 흐르고 있구나.

우리 국민 모두 내가 갖고 있는 이 피를 갖고 있는 이상 자신 있게 세계로 나갔으면 좋겠다. 다른 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부딪쳐 싸우면서 우리 피가 얼마나 특별한지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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