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미니 광고음악 'T-링' 작곡가 김연정씨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자주 들을 수 있는 음악은? 빅뱅의 '거짓말'일 것 같지만, 틀렸다. 음표 다섯 개로 만든 달랑 2초짜리 음악이 하루 1800만 번이나 울린다. 작년 말부터 SK텔레콤 가입자끼리 전화 걸 때 들리는 음악 "딴딴따단딴(솔미파라솔)"이다. SK텔레콤의 TV와 라디오 광고 끝에도 어김없이 붙고, 새해 들어 숫제 이 음악에 '새해 복 많이'란 가사를 붙인 광고가 나왔다.
'T-링(ring)'으로 불리는 이 음악의 작곡가는 음향프러덕션 '닥터 훅'의 김연정(32) 음악감독. '2초짜리 인기음악'을 작곡한 그녀를 9일 만났다. 이화여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김씨는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쳤다. 대학생 합창동아리 '쌍투스'에서 작·편곡과 연주를 하다가, 영화음악계를 거쳐 2001년 광고계로 들어왔다.
'T-링'이 탄생한 건 2006년 8월. 그때 김씨에게 떨어진 요구사항은 이랬다. "문이 열리는, 꿈꾸는 듯한, 고급스러운, 미래지향적인, 프리미엄 느낌의 2초짜리 음악." 그녀는 "쉽게 말해 뜬구름 잡는 소리를 만들라는 거죠"라며 웃었다. 이 요구사항에 다시 "맑은, 쉽게 따라할 수 있는"이 추가됐다.
- ▲ SK텔레콤 광고의 2초짜리 히트음악을 만든 김연정 감독.
김씨는 그해 여름 한 달간 키보드와 신시사이저, 컴퓨터 앞에서 야근하며 2초짜리 음악 20여개를 만들었다. 피아노와 기타는 기본이고, 바이올린, 팀파니, 하프시코드, 마림바, 피리까지 수십 가지 악기 소리를 섞고 풀길 반복했다.
그가 "버려진 아이들"이라며 그 중 몇 개를 들려줬다. 어쿠스틱한 것, 몽환적인 것, 국악 리듬을 닮은 것들이 매킨토시에서 주르륵 흘러나왔다. 'T-링'이 마지막에 나왔는데, 익숙한 탓일까, 단연 돋보였다. 이 음악은 언뜻 건반소리 같지만 신시사이저로 베이스를 연주한 것이다. 멜로디는 '솔미파라솔'이지만 잘 들으면 앨토 파트 '미도레파미'가 들린다.
김씨는 'T-링' 말고도 광고에 쓰인 '초미니 음악'을 여럿 작곡했다. KTF 광고의 "해브 어 굿―타임", 맥도날드 광고 끝의 "맥도날드!"하는 짧은 음악이 그의 작품이다. 광고용어로는 '징글(jingle)'이라 부른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징글은 다국적기업 인텔의 '인텔 인사이드' 테마음악. 4개 음표로 만든 3초짜리로, 멜로디는 '도미도파'다. 이 징글을 만든 오스트리아 밴드 '에델바이스' 출신의 월터 베르조바는 이후 광고음악회사를 차려 '돈방석'에 앉았다.
"모든 광고음악가들은 '인텔의 망령'에 시달리죠. '절대로 인텔 징글을 따라잡을 수 없다'는." 김씨는 "T-링이 히트를 쳤지만, 나는 그저 월급을 받을 뿐"이라고 낄낄 웃었다. 그는 이내 "한 달 작업한 건데, 어떤 사람은 '음표 다섯 개가 무슨 작곡이냐'고 말하곤 하죠. 그럴 때 섭섭해요"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새해 복 많이'하고 T-링에 맞춰 인사하는 걸 봤어요. 뿌듯하기도 하고, 도둑맞은 것 같기도 하고." 그는 "'광고는 얼음조각'이란 은유가 있다"고 했다. 깎을 때는 작품 만드는 것과 똑같이 하는데, 결국 잊혀진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T-링' 없이 빌 에반스의 '왈츠 포 데비(Waltz for Debby)'가 흘렀다.
Posted by Takumi

